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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꽃을 따라가 보면송진권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이 안 시인〈동시마중〉편집위원

분초, 분추, 정구지, 소풀, 솔, 졸, 세우리. 모두 ‘부추’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리키는 것이 정말 모두 같을까. 제주 사람이 먹는 ‘세우리’와 서울·경기 사람이 먹는 ‘부추’, 경상도 사람이 먹는 ‘정구지’와 전라도 사람이 먹는 ‘솔’, 충북의 충주 제천 사람이 먹는 ‘분초’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 다르니 실물이며 맛, 그것에 접속하는 정서도 어딘가 다를 것이다.


같은 집 부추라도 장독대 옆에서 자란 것과 뒷마당 닭장 옆에서 자란 것은 작으나마 다른 구석을 갖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 집에도 서너 군데에서 부추가 자란다. 어디서 자라느냐에 따라 길이와 도톰함, 빛깔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곳에서 자란 부추도 봄 다르고 가을 다르다. 그런데 부추의 차이는 이보다 훨씬 더 개별적인 환경과 체험의 층위에서 구성된다. 시장에서 부추를 처음 산 날이 그 자체로 특별함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자면 부추가 매개하는 어떤 사건, 체험을 구성할 사연이 개입해야 한다.


  • 나에게 부추는 어머니와 함께 온다. 여름, 대청마루, 왜낫, 어머니의 땀내, 잘 다듬어 가지런히 놓인 짚, 수북하게 쌓인 부추……. 어머니는 잘 드는 왜낫을 들고 텃밭에 나가 알맞게 자란 부추를 썩썩 베어다가 대청마루 그늘진 곳에 쌓아 놓는다. 어린 나는 어머니 곁에 꼼짝없이 붙잡혀 부추를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장면에 아버지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숫돌에 날카롭게 갈아 펌프 옆 그늘에 잘 세워 놓은 왜낫이며, 푸푸 입으로 물을 뿜어 가며 쓰기 알맞게 적셔 놓은 짚이 말하자면 부추의 기억에 아버지가 끼어드는 방식이다. 형과 누이들은 나오진 않는다. 공부하러든 돈 벌러든 대처로 나간 집에 막내인 나만 어머니 아버지와 남아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마흔셋에 나를 낳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낳은 열 번째 자식이다. 다 살리진 못했다. 맨 먼저 얻어 웬만큼 키워 놓은 아들 넷을 전쟁통에 줄줄이 잃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들이 다 살았더라면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 고생을 하며 살지 않으실 텐데, 어린 나는 어쩌다가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지독히도 성실했으며, 그랬기에 무일푼으로 시작했으나 내가 태어나 자랄 때에는 새벽마다 쌀이며 보리쌀을 꾸러 오는 이웃이 적잖을 정도로 살림을 일구셨다.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송진권 지음 걷는사람 펴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천 시내로 보내져 자취를 하며 지냈기에 원체험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내 나이 열셋에서 종료되었다. 그런데 쉰셋이나 된 지금까지도 나의 원본이며 원천이 거기에 다 있으며, 그로부터 조금도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풀이며 티끌, 흙 알갱이, 시들고 병든 잎을 가려 낸 부추를 어머니는 한 움큼씩 단을 지워 짚으로 묶고, 매듭짓고 남은 지푸라기는 가위로 말끔히 잘라낸 뒤 펼쳐 놓은 보자기 위에 가지런하게 쌓았다. 한 보자기가 되면 그것을 이고 어머니는 장으로 가셨다. 그리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그렇게라도 하여 고추를 거두어들이기 전까지 소소하게 드는 돈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부추만이 아니라 냉이, 달래, 개망초 싹, 작약이며 목단 꽃, 삽주까지 악착같이 긁어모으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부추는 나를 이 모든 것으로 데려간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너무나 개별적인 시간과 장소의 갈피, 오래전 없어진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 나를 갖다놓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환지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부추는 부추 이상이고, 나와 당신이 다른 것처럼, 부추는 부추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매번 길을 잃는 건 없으나 있는 것을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재하는 의식 저 아래의 작용을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송진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걷는사람 2018)는 우리 저마다의 그것을 들여다보게 한다. 부추꽃은 원체험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부추꽃만 하얗게 피었습니다//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살았었다고// 뜨물 빛 부추꽃이 고샅까지/ 마중 나와 피었습니다”
    -<부추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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