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2018 여름’을 논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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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2018 여름’을 논죄함
  • 충청리뷰
  • 승인 2018.09.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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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효 진 소설가

이놈 여름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너는 천하의 금도를 어겼으니 볼기를 만 대를 맞아도 싸다. 하늘이 만물을 만들고 주재함에 지켜야 할 금도를 만들어 서로 부딪히거나 괴롭히지 않고 조화롭게 살도록 했거늘, 네놈은 골이 비었는지 돌았는지 미친 송아지 날뛰듯 이리 받고 저리 받으며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무슨 벌을 받아야 할꼬. 무심하고 한심하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 너는 당연히 따듯한 햇볕과 훈훈한 바람을 불어주어서 온갖 생물이 마음껏 생장하고, 나아가 가을에 낟알이 영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들에게도 그렇다. 겨우내 음울한 처소에서 웅크려 있던 군상들이 비로소 봄을 만나 기맥을 진서하고, 바야흐로 여름 너를 만나 산과 바다로 뛰쳐나가 기지개를 켜며 환호작약하게 해야 한다. 헌데, 네 이놈 너의 소행은 어땠느냐!

여름이 여름다우려면 30도면 족하다. 그 정도면 식물의 생육에도 흡족하고 인간의 물놀이에도 지장이 없다. 혹 네가 35도까지 열을 올린다 해도 거기까진 참을 수 있다. 헌데 인정머리 없는 너는 무려 41도(8월1일 홍천)까지 달구어서 온갖 삼라만상을 뜨거운 가마솥에 넣고 들들 볶 듯했다. 견디다 못해 옥수수도 밭에서 벌겋게 타죽고, 사과도 열에 데어 타들어갔고, 바다에선 양식어류들이 떼죽음을 하고, 인간도 개처럼 더위에 지쳐 혀를 길게 빼물고 헐떡거리다가 마침내 40여명이 목숨을 잃고 불귀의 객이 돼버렸다.

그뿐인가. 물이 말라 타죽은 어린 개구리가 무릇 기하이며, 지열 때문에 생을 하직한 지렁이와 개미가 무릇 기하이며, 모기의 애벌레 장구벌레가 뜨거운 볕과 물에 견디지 못해 죽어 나자빠진 게 무릇 기하인가. 이 모두 네놈이 금도를 어긴 탓으로 하늘의 순환이치가 어긋나게 된 것이다.

온갖 채소며 곡식도 네놈의 발광 탓에 말라서 오그라들고 타죽는 바람에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추석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드디어는 네놈 횡포가 조상님 차례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구나. 이놈아, 그래 조상님네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너의 발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여름, 폭염일수는 35일, 열대야는 29일이라는 역대급 최고 신기록을 세웠다. 그 지긋지긋 했다는 1997년의 폭염 기록을 깨뜨리는 엄청난 기염을 토해냈다. 장하다, 그래 장하다

여름이 여름으로 존경과 두려움을 함께 받는 까닭은 더위라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하늘이 부여한 힘으로 세상만물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힘을 아껴 써야 한다.

 

옛말에 인물 자랑하는 사람 인물로 망하고 힘깨나 쓰는 놈은 힘으로 망한다고 했다. 힘은 아낄 때 힘이 있어 보이고 남들이 두려워한다. 힘을 함부로 쓰면 머리 없는 폭력배가 되고 만다.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앞뒤를 가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힘이 있어도 아낀다. 힘은 아낄 때 남들이 더 두려워한다. 헌데 너는 어찌 했느냐. 네 힘이 고작 100밖에 안 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너는 머리 모자란 건달처럼 150을 쓰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래, 보자. 네가 조자룡이 헌칼 쓰듯 불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억조창생을 먹여 살릴 곡식은 밭에서 타 죽고, 지렁이 개구리 모기는 뜨거운 하늘 아래 타서 말라비틀어지고, 인간도 혀를 빼물고 허덕이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이가 속출했다. 너는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너를 향한 만물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친다는 것을 너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게 천하순환의 이치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돌고 변하고 나간다. 너는 만년 영생을 믿었지만 때가 흘러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 요란하고 소슬바람 상쾌하다. 이제 삼라만상은 너를 몸서리쳐지는 잔인한 폭군으로 기억할 것이다. 꿈에라도 다시 볼까 겁난다. 어서 가라, 악명 높은 역대급 폭군 2018 여름,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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