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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아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제목과는 달리 결코 가볍지 않는 소설이다. 소설이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불려 모을 수 있는지, 읽어 나갈수록 맨홀에 빠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하지 않고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에 등장해서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소설과 에세이가 잘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설임에도 소설같지 않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도록 사유의 공간을 내어준다. 작가 자신은 소설을 현재적 시점으로 쓰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통해서 독자도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를 자기화하며 ‘나라면’이란 질문을 하게 한다. 결론은 ‘참, 어렵네’라는 한숨 섞인 고백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참을 수 없게 매력적인 것은 쿤데라가 구성한 인물들의 삶의 양태가 당시의 시대상황(소련의 프라하 침공)에 잘 녹아 있으며,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후 좌우 이데올로기로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의 그 깊이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소설보다도 세련된 문장을 자랑하며 지극히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단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생의 일회성(두 번 살 수 없다)이 빚어낸 두 가지 양상,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필연성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연성은 매번 우리의 운명을 쥐고 흔든다.


테레사와 토마스의 만남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과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들이 교차하며 단 한번 뿐인 우리의 생 앞에 좀 더 자기답게 사는 것, 곧 사랑(지극히 개인적인)을 선택하게 한다. 토마스의 선택은 존재의 가벼움이었다면 테레사의 선택은 그와는 다른 존재의 무거움이었다.


토마스가 테레사에게 끌린 것은 그녀의 손에 든 『안나 카레니나』라는 톨스토이의 소설 때문이었다. 그녀는 보헤미아 지방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급이다. 토마스는 프라하에 살고 있는 유능한 외과의사이며 여행 중에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테레사를 만난다.


가벼움과 무거움
안나 카레리나가 토마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면, 테레사는 가느다란 끈에 매달린 삶, 곧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를 열고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그에게로 온다. 토마스는 프라하로 자신을 찾아온 테레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연인도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까맣게 콜타르 칠을 한 광주리에서 주워 올려 자기 침대의 강둑에 내려놓은 아이였다’ 토마스에게 테레사는 우연성에 기인해 필연성으로 당도한 거부할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었다.


토마스, 테레사와 함께 또 다른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대변하는 한 쌍의 주인공은 사비나와 프란츠이다. 토마스와 사비나의 사랑이 가벼움이라면 토마스를 사랑한 테레사와 사비나를 사랑한 프란츠 사랑은 무거움이다. 토마스와 사비나는 책임지지 않은 사랑,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랑을 원하지만 상대인 테레사와 프란츠는 자신의 전부를 걸기 때문에 충실한 사랑을 원한다. 사비나에게 그러해야 한다는 것(필연성)은 곧 사람들이 자기 안에 숨어있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화를 포장하기 위해 구축한 세계라 생각한다.


사비나는 가벼움으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착오에서 이룩하는 아름다움을 좇아가며, 타인의 시선을 거부한다. 곧 누군가의 시선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와 같은 뜻이다.


가장 사적인 것들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삶의 양태를 생산하는지를 작가는 섬세하고도 무겁게 그린다.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면서 주고받는 사적인 대화가 공개적으로 라디오에서 방송된다면 그것은 세상이 강제수용소로 변해버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강제수용소란 인간이 계속 가축처럼 우리 안에 가두어져 밤이고 낮이고 살아야할 세계이다. 통제된 사회란 사적인 것들이 제거된 사회를 의미한다.


시인 폴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것 만큼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이것만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있을까?


삶의 일회성이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원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상상으로 나아가게 하며, 평가받기 보다는 선택하며 부당한 것들, 제한되어 있는 것들과 싸우며 다르게 서로 다르게 존재해야 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아닌지, 퍼뜩 그런 생각이 스쳤다.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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