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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과 날강도가 출몰한다?
한덕현 발행인

산적은 과거 산속에 숨어 살면서 남의 재물을 빼앗던 도둑을 말한다. 요즘도 주말 산행을 하다가 종 종 만나게 되는 전국의 유명 고갯길에는 여지없이 옛날 산적 얘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날강도는 남이 보는 데서도 거리낌없이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쳐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아주 고약한 이름이다. 강도 중에서도 피도 눈물도 없는 최악의 철면피가 날강도인 것이다.


산적과 날강도가 다른 데도 아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나타났다. 국립공원 사찰이 받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고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이에 대한 지지글이 잇따르면서 사찰측을 산적과 날강도로 표현하는 댓글이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만큼 국민 상식을 유린하는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관람하기 위해 방문객이 지불하는 경비인데 이 것이 갈취 성격의 ‘돈’으로 변질된 것이다. 문화재 관람과는 전혀 무관한 단순히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한테도 강제로 징수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문제에 근원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속리산 법주사다. 1970년 정부가 속리산 탐방객을 상대로 국립공원 입장료와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의 합동징수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이후 설악산 신흥사를 비롯해 전국의 유명사찰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국민여론을 무시한 일방적 조치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국립공원 입장료가 부과되던 때라 슬그머니 묵과된 것이다.


문제는 2007년 1월 1일자로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불거졌다. 철수한 국립공원 직원들을 대신해 이번엔 사찰측이 문화재 관람료를 직접 징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절을 찾지 않는 일반 등산객들한테까지 관람료를 일괄 요구하면서 마찰이 일었고 급기야 전국 곳 곳에서 이 문제가 법적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등 산중 홍역을 치렀다.


결과는 일반 등산객들한테까지 관람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는 것. 하지만 지금도 극히 일부를 제외한 해당 사찰들은 여전히 관람료를 받고 있다. 문화재 관리와 보수를 위해선 관람료를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미 언론에도 숱하게 보도됐지만 가장 악랄한 곳은 지리산 천은사이다. 통상 지리산을 서쪽으로 등반하기 위해선 주로 성삼재를 찾게 되는 데 전남 구례로부터 이 곳에 다다르는 861호 지방도를 옆으로 끼고 천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도로에 들어서게 되면 사찰경내도 아닌데 무조건 한 사람 당 1600원을 내야한다.


차량 운전자들과 실랑이라도 벌어지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차량을 막기도 하고 어느 땐 위협을 가한다. 자신들의 강제징수 편의(?)를 위해 한 때는 덩치 큰 사람들을 배치했지만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요즘은 애써 이런 분위기를 자제하려는 분위기다. 그래도 차량 운전자의 목소리가 크거나 사찰측 사람들보다 더 인상이 위압적이면 무사통과되기도 한다. 국립공원에서 시쳇말로 양아치 짓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를 피하기 위해 관람료를 받지 않는 반대편의 남원쪽으로 성삼재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1인당 4000원(성인 기준)인 속리산 법주사의 관람료를 피해서 사람들이 경북 상주의 화북쪽으로 속리산을 오르는 현상과 똑같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로 인해 충북과 보은군은 관광객을 앉아서 빼앗기고 있다. 특히 주말마다 국립공원에 장사진을 치는 각종 산악회의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이들을 싣고오는 관광버스 한 대 당 대략 15만원 내외를 강제징수당하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내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곳은 현재 전국적으로 27 곳 정도다. 여기에 도립과 군립공원까지 합치면 대략 60여 곳이 되고 징수되는 연간 관람료는 500억원 내외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이 돈의 크고 작음과는 전혀 상관없다. 엄연한 불법인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묵인, 방치하고 있고 행위의 당사자는 보란듯이 이같은 만행을 계속한다는 현실에 분개한다. 이 것만 보면 대한민국은 법과 상식이 지배하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힘 쎈’ 놈이 법과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세상인 것이다.


문화재관람료에 대한 비난여론은 최근 조계종의 총무원장 사태로 상징되는 불교계의 일탈이 불을 지른 꼴이 되고 있다. 문화재관람료 자체가 이른바 눈먼 돈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왜 애먼 국민들이 그들의 주머니를 챙겨줘야 하느냐는 자책을 공감하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사찰과 스님들의 비위, 비리에 일조한다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엔 종교라는 ‘성역’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눅이 드는 국가권력과 공권력에 대한 배신감도 똬리를 틀고 있다. 뻔한 얘기이지만 국가가 문화재관람료에 근본적인 수술을 가하지 못하는 것은 ‘불교’라는 거대한 집단의 힘을 상대하기가 버거워서다. 겉으로는 문화재관람료를 대체할 국고지원에 대한 부담감 등을 거론하지만 속내는 ‘완벽하게 보장된 수입원’을 건드리는 데 따를 불교계의 반발이 더 두려운 것이다. 표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문화재관람료 갈등해소 방안으로 국가가 재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언급했지만 후속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법주사의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충북도는 2016년 8월 법주사와 보은군과 이의 폐지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고도 역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올 초엔 이시종 지사가 관련 논의를 중단한 상태라며 사실상의 포기의사를 밝힘으로써 행정불신만 초래했다.


주말 산행인들을 중심으로 전국민들의 반세기에 걸친 집단 민원에도 현 추세라면 문화재관람료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난망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모두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하여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 하나 있다. 광화문 촛불혁명처럼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이른바 ‘떼 심’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극단의 처방이다. 법으로도 안되니 남은 건 이 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의 발로인 셈이다.


이번 국민청원이 어떻게 진행될 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일이다. 산적과 날강도들의 발호를 더 이상 묵과하기엔 정말이지 국민자존심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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