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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는 세 청년들의 이야기속초지역 중형서점으로 자리잡은 동아서점·문우당·완벽한 날들

‘바다 하면 동해 바다지’ 이렇게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남해는 아름답지만 온화해서 은퇴자의 도시처럼 느껴졌고 밤이면 파도가 사납게 울어대는 검푸른 바다야말로 심장을 뛰게 한다고 느꼈다. 강릉, 정동진, 속초, 그리고 설악산. 동해의 산과 바다에 수많은 기억들을 묻었다. 돌아보면 청춘의 시기였다.


비단 나 뿐이랴, 설악의 단풍과 먼 바다에 깜박이는 오징어잡이배의 불빛, 갯배 타고 건너는 아바이마을 등 아름다운 풍광은 2017년 한 해에만 속초시에 1700만 명 넘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최근 관광 명소로 새로운 키워드가 하나 추가되었다. 서점 여행이라는. 물론 1700만 관광객 숫자를 놓고 보면 바닷가 모래알처럼 아주 작은 점 하나를 찍은 것 뿐일테지만 그래도 나는 반갑다.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의 관광도시 한복판에 서점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여행의 길에서 서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책을 산다는 사실이.


3대 역사가 살아있는 동아서점
그러나 실은, 이 서점들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최근에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역 중형서점으로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동아서점’과 ‘문우당’ 이야기다. 동아서점은 할아버지의 동네 문구점에서 출발해 아버지가 동네 서점으로 이어받았고 지금 아들이 지역 중형 서점으로 성장시킨, 3대의 역사가 살아있는 서점이다. 4년 전, 속초시 교동 지금 자리로 이전해 대대적인 리모델링 후 서점이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3대의 역사가 살아있는 ‘동아서점’


무엇보다 당시 중형 서점으로선 드물게 넓은 공간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소홀함 없이 잘 정리되고, 주제에 맞게 배열된 책의 선정이 돋보이는 큐레이션 서점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책방을 물려주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한 책방에서 함께 일하며 부자로, 선후배로, 동료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점 또한 눈길을 끌었다.


옛날 방식대로 다소 뻣뻣하게, 손님이 와도 무뚝뚝할 뿐인 아버지는 매일 아침 넓은 서점을 대걸레로 청소하며 일상을 지킨다. 30대 청년인 아들은 외부 직원 없는 이 서점의 점장을 맡아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지역과 협업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작가 초청 행사도 기획하고, 짬짬이 글을 써서 책을 펴내기도 한다. 바빠도 너무 바쁜 이 젊은 서점인은, 그러나 아직 어린 아기가 할머니 혹은 엄마 품에 안겨 서점을 서성거릴 때 곁눈으로 아이를 살피며 일하는 작은 즐거움을 간직한 행복한 가장이다.


‘동아서점’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부터 여기엔 또 하나의 서점이 있었다. 30여 년 간 자리를 지켜온 ‘문우당’. 지역 중형서점으로 각종 참고서와 교재를 팔며 역할을 해오다 지난해부터 리모델링을 진행해 최근 트렌드에 맞춘 세련된 책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중심에 역시 부모님의 가업을 이은 20대 딸이 있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은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와 서점 일을 맡았다. 서점의 로고디자인을 비롯해, 쇼핑백과 책갈피 등 각종 소품에 젊은 감각을 입혔고 독립출판물과 작은 소품들을 진열 판매하는 테이블도 꾸렸다.


두 서점이 한 동네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은 자연히 두 곳을 함께 들르게 되고 조금 다른 개성과 특징을 담은 두 개의 쇼핑봉투를 든 사람들은 거기서 조금 떨어진 북스테이 서점 ‘완벽한 날들’로 향한다.


최윤복 씨의 ‘완벽한 날들’
‘완벽한 날들’은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과 바로 맞붙어 있다. 버스로 속초를 오는 이들이라면 이곳이 첫 방문지가 될 터다. 아담한 2층 건물에 1층엔 작은 책방이, 2층엔 게스트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이곳은 바다와 유흥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보다는 책과 함께하는 조용한 휴식을 꿈꾸는 이들의 안식처이다. 실제 이곳에 숙박하는 손님들 가운데는 북스테이를 하면서 카페를 겸한 책방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구도심의 오래된 골목이 살아있는 동네를 산책하며 하루를 머물다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대표 최윤복씨(35) 역시 고향이 속초다. 서울에서 NGO대학원을 다녔고 시민단체 활동가 일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고민하며 서점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속초에서 새로운 서점 문화를 이끌고 있는 동아서점, 문우당, 완벽한날들의 세 청년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역 중형서점으로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문우당’
책과 함께 조용한 휴식을 꿈꾸는 이들의 안식처 ‘완벽한 날들’


개인사업자 700만 명 시대이자 자영업자의 위기라는 요즘, 집을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고향, 부모님의 터전에 청년들이 자기 삶을 입힐 수 있는 작은 가게, 이런 것들이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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