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를 따뜻하게 묘사한 것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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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따뜻하게 묘사한 것에 주목
  • 충청리뷰
  • 승인 2018.10.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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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 소설 <수인>을 읽다
윤석위흥덕문화의집 관장

나는 지난 7월, 금년 6월초 발간된 황석영의 두 권짜리 자전 <수인>을 읽었다. 황석영은 우리나라 문단에서 손꼽히는 이야기꾼으로 한국문단 소설가 명성의 앞줄에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년전에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3대구라’라면 백기완과 방동규와 황석영이라.” 천부적인 재담꾼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관한 한 황석영은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와 어금버금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객지> <삼포 가는 길> 등의 작품은 세계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특히나 <손님> <심청, 연꽃의 길>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으며 <오래된 정원>은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하고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수많은 문학상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책 <수인>과 청주
이번에 출간된 <수인>에서 방황하던 젊은 황석영이 풋풋한 청주를 묘사한 장면이 특별하게 눈에 띄었다. 2권 85쪽에서 88쪽에 이르는 4쪽의 장면, 청주근교인 부강과 아름다운 동네이름들, 미호천 주변농가의 묘사, 도청주변인 듯 싶은 시장(아마 서문시장인 듯) 주점의 묘사가 돋보였고 “이때의 경험이 작품으로 살아났다”고 술회했다.

나는 그가 우리도시 청주를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년 전 내가 충북도계탐사대와 함께 걸었던 신탄진에서 부강에 이르는 아름다운 강변길은 트레킹코스로 개발함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호천 서평리에서 황탄리 미호천교까지 구간의 아름다운 강변길을 황석영작가와 함께 걷고 느끼는 상상도 해 본다. 그리고 도청근처 서문시장쯤에 선술집을 정해 황석영 삼포주점(?)을 하나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여러 전문가들의 회의를 통해 문학기행과 또 다른 특화된 행사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기억과 잔상들이 <삼포 가는 길>의 소재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 졌다고 황석영 작가는 적었다.

다음은 황석영의 자전 <수인>의 해당 부분 일부를 옮겨 적은 것이다.
대위와 나는 강을 따라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개구리와 맹꽁이 우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미호천을 따라 청주까지 가던 길은 훨씬 나중인 1970년대에 발표한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의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근대화 바람에 내몰린 사람들이 꿈꾸었던 추억과 상상 속의 공동체란 이제는 지상의 아무데도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황량한 이야기다.

여기서 부랑 노동자 영달, 감옥에서 나와 공사장을 전전하는 정씨, 그리고 빚더미만 남은 작부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향하여 달아나는 ‘본명이 이점례’라는 백화 세 사람은 그들이 찾아가 안식할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아주 잠깐’ 따듯한 연대감을 확인한다. 마지막에 그들의 꿈이 환멸로 변하면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곳’으로 각자 불확실한 어둠을 향하여 떠나간다.

주위는 별도 없이 캄캄했다. 대위와 나는 철교를 건너고 서평리에서부터 강변을 따라 나란히 뻗어나간 들길을 걸었다. 군화 틈으로 빗물이 새어들었는지 발바닥이 양말과 함께 철썩 달라붙었다. 바로 지척에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도 이 부근 마을의 예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섬뜸, 달여울, 다락골, 그리고 강내면, 샘골 등등......

우리는 길이 북쪽으로 휘어지며 강변과 멀찍이 헤어지는 어름에서 징검다리를 건넜다. 강을 건너 안쪽으로 올라가서 마을이 보이길래 무조건 찾아들었는데 개구리 소리만 요란할 뿐 불도 모두 꺼져서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같았다. 우리는 마을 어귀에 나중에는 새마을회관 자리였을 법한 헛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판자문을 열고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대위와 나는 가마니를 한 장씩 마른 땅바닥에 깔고 누웠다.

“웬 사람들이여?” 누군가가 판자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났다. 벌써 날이 밝은 지 한참이나 되었던 모양이다. 농부는 무엇을 찾으러 왔던지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둘러보던 참이었다. “길 가다 비가 와서요.” 내가 그렇게 멋없이 중얼거리는데 대위가 일어나 나잇살이나 먹어 뵈는 농부에게 인사를 꾸뻑 했다. “동네에 인사가 아닙니다 이거, 한밤중이라 그냥 들어와서 쉬었구먼요.”

“아아 괜찮어유.” 그가 농기구 등속을 챙겨가지고 나가다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침을 자셔얄 텐디.” 대위는 뒤통수에 손을 얹고 허허, 하며 웃기만 했다. “여기는 주막도 읍는디, 하야튼 따라와바유.” 농부는 우리를 데리고 마을길로 올라가 수양버드나무가 섰는 앞집으로 들어갔다.

마당도 널찍하고 일자집 방들 앞의 기다란 마루도 번듯했다. “여기 좀 앉으슈.” 그 농가에서 아침을 얻어먹게 되었는데 미호천 맑은 물에서 아낙네들이 건져올린 올갱이에 푸성귀 넣고 된장 풀어 끓인 국이 얼마나 맛있던지 염치 불고하고 두 그릇이나 비웠다. 고추장찌개며 가지나물과 호박나물은 그 댁 아낙의 얌전하던 모습처럼 깔끔했다.

아침을 얻어먹고 나서 대위는 충북도청에 들러서 공사판이 어디에 벌어져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계절이 가을이라면 이런 중농의 집에서 한철 추수라도 거들면서 그 올갱이국을 원 없이 먹고 싶었다. 청주 시내까지 외길 철도가 있고 열차가 운행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수십 리를 다시 걸어서 중심가로 들어갔다. 무심천 건너 우암산 아래 자락이 중심가인 셈이었다. 대위가 도청에 들어가서 알아보고 나오더니 올해에 충북에는 큰 공사가 없고 전북에 간척지 공사판이 크게 벌어져 있다고 했다.

대위와 나는 시장 모퉁이에서 그럴듯한 선술집을 발견하고 점심 요기나 하려고 찾아들었다. 아주머니가 연탄불 위에 민물새우찌개를 끓이고 있어서 막걸리 한 주전지를 시키고 시원한 새우찌개를 안주로 을씨년스러운 날궂이 풀이를 했다. 문득 우리 등뒤에서 문이 벌컥열리더니 속치마 차림의 여자가 고무신을 찍찍 끌고 밖으로 나가서는 하수도에다 대고 왝왝 토악질을 해댔다.

다시 되돌아 방으로 들어가면서 작부가 우리를 곁눈으로 힐끗 보았지만 별 볼 일 없다는 무심한 태도였다. 한눈에 떠돌이 노동자임을 알아본 것일까. 이런 기억과 잔상들이 나중에 포항의 부대 근처 마을과 어우러져<삼포 가는 길>의 ‘백화’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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