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살았던 한 여인을 기억하는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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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 살았던 한 여인을 기억하는 전시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0.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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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몸 미술관과 세종 유계화가옥에서 <장소를 품다-부강>전시회
서용선-유계화1, 179×60×70㎝ 기와 가변설치, 아카시아 나무목재, 기와 가변설치, 2018

우리들의 집은 ‘이름’이 따로 없다. 매매가와 동·호수, 영어와 한국어가 혼합된 정체불명의 단어들만이 집 앞에 놓여 있다. 누가 살았는지, 어떠한 기억을 품고 지냈는지 우리는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게 되고, 만약 내가 죽은 후에도 그 집이 남아있다면 또 다른 주인들이 바쁘게 이삿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 집에 공식적인 이름이 붙은 것은 1984년,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 ‘청원 유계화 가옥’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신설됨에 따라 2014년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됐다. 그러다가 올해 여름 이 집을 처음 소유했던 홍판서의 이름을 따서 ‘세종 홍판서댁’으로 가옥명이 다시 바뀌었다.

처음 집을 소유했던 이가 결국 마지막까지 살던 이의 이름을 밀어버렸다. 이 집은 이제 ‘홍판서댁’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세종시는 1866년(고종 3년) 건립된 부강리 고택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비의 조카 홍순형(1858~미상)이 거주한 사실이 있어 '홍판서(예조판서)의 집'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 1926년에 태어나 마지막까지 생애를 보냈던 여인 ‘유계화’의 이름을 기억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유계화는 이화여전 의과대에 입학 후 졸업까지 마치지 못하고 고택에 내려와 평생을 살았다.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 3명의 여자가 집을 지켰다. 그는 외부와의 교류를 최소화 한 채 고양이와 꽃, 활자를 가까이했던 독신 여성이다. 시골마을 가장 좋은 집에서 학벌 높은 독신여성으로 평생을 혼자 산 그의 삶엔 늘 많은 이야기가 따라다녔다.

10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스페이스몸 미술관 제2전시장과 이 ‘세종 홍판서댁’ 두 군데에서 유계화 관련 전시회가 열린다. ‘장소를 품다-부강’전시에는 서용선, 손부남, 채우승, 정승운, 정보영 작가가 참여한다. 작가들은 직접 부강 고택에서 머무르면서 작업을 했다.

서용선 작가는 도시와 신화, 역사와 자신이라는 고찰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노동적인 육체성을 띤, 거칠면서도 강인함을 특징으로 하는 조각과 회화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손부남 작가는 변형과 비약, 유머에 강하다. 유계화 가옥에 얽힌 인물들, 개인의 경험이 담긴 입체작품을 선보인다.

시간을 멈춰 빛으로 공간을 만드는 정보영 작가는 유화 작품을 전시한다. 실재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들의 이미지적 결합으로 환영과 실재의 접경을 넘나든다.

정승운 작가는 고택과 미술관에 공간과 역사를 이어 완만하나 수없이 많은 돌기를 가진 선을 걸어 놓았다. 채우승 작가는 희고 단단하게 나부끼는 ‘자락’형상을 고택에 설치했다. 이는 영혼 또는 바람처럼 형체 없는 것들을 묶어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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