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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전태일을 다시 생각한다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그동안 빛났던 노란 은행잎들이 비바람에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을 덮었다. 찬연했던 가을 단풍잎들이 철수를 시작했다. 뚝 떨어진 기온에 한기를 느낀다. 뜨거운 국물에 숟가락이 가는 계절이 왔다. 옷장에서 두툼한 외투를 꺼낼 생각을 하며 계절의 변화가 주는 쓸쓸한 마음 끝에 나는 전태일이 생각났다.


  • 그해 11월 처음으로 나는 노동자 대회에 참가했다. 차가운 바닥에 상자를 찢어 나눠서 깔고 앉아 연단을 바라보며 외쳤던 구호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사라진 ‘전태일’을 불러낸 것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치열했던 스물둘의 시간을 다시 꺼내 보게 된 것은 고등학생인 막내가 ‘체게바라’ 평전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체게바라’가 실존 인물인지를 내게 물었다. 영화 속 인물이 아닌가를. ‘영화 속 인물’ 이란 표현에서 나는 이제 겨우 스물둘의 나이에 분신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청년 ‘전태일’을 생각했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하루 18시간 노동으로 망가져 가는 어린 여공들의 삶과 그 차가운 칼바람이 생각났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광장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온몸에 불을 붙였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외침과 함께 그의 몸은 불타올랐다.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겨우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고 했다.


    전태일 평전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어린 시절, 2부는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 3부는 바보회의 조직, 4부는 전태일 사상, 그리고 5부는 1970년 11월 13일이다. 전태일 평전을 쓴 작가는 조영래 변호사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조영래’라는 이름은 없었다. 전태일 기념사업회라는 이름으로 책은 출판되었다.


    ‘조영래’라는 사람이 전태일 평전을 쓴 작가로 알려진 것은 그 역시 폐암으로 43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서였다.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려내고 그의 삶을 온전히 왜곡 없이 표현하는 일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진보적
    전태일의 일기장을 기반으로 쓰인 이 책은 절절한 전태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그의 고통과 결단의 시간을 잘 그려낸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해설이란 책을 수없이 읽으며, 자신의 이해력에 한탄하며 자신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바람은 그가 죽고 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의 친구는 조영래 변호사였다.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돌베개 펴냄


    조영래 변호사는 180명이라는 수배자를 낸 민청학련(전국 민주청련 학생 총 연맹)사건 관련 도피생활 중에 전태일 평전을 집필했다. 만약에 ‘조영래’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전태일이 있었을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죽어간 가난한 청년 노동자라는 한 줄 기사로 남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전태일이란 젊은 노동자를 우리의 심장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일약 우리에게 횃불로 등장했다. 서울대 여학생이 부천경찰서에서 성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 당장 가서 알아보자’라고 하며 인천교도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5년의 치열한 법정 싸움 끝에 가해자인 문귀동을 끝끝내 구속하게 했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사법권의 공권력이 어떻게 남용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국가 폭력에 대해 저항하는 양심 있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의 치열한 싸움으로 기록되었다.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고통받는 사람들은 항상 고통만 받고 있는가?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책 126P).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가?


    전태일은 청계천에 동상으로 서 있다. 이 곳을 지나치는 무수한 관광객들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전히 우리는 보이지 않게 더 첨예화된 기계로 사람이 먼저가 아닌 돈이 우선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장 인간적인 것이 진보적이다’ 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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