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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세상, 그대에게 위로를김탁환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

처음에는 책 제목을 잘못 보고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뭔가 달달한 이야기겠구나, 생각하고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 말투가 이상하다. 사극에서 많이 보던 말투다. 다시 책 표지를 봤다. 연애가 아니라 ‘연예’였다. 그리고 그림들을 보니 탈과 각종 악기가 그려져 있다. 그렇다. 이 소설의 배경은 조선시대이고,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였다. 한 평생을 그야말로 사람답게 살고 간 ‘달문’이라는 광대의 이야기다.


교육과 관련한 책은 절대 아니다. 소설 내용 중 학교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교사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왜 그런지 책의 내용을 좀 살펴보려고 한다.


달문은 어린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아이가 울면 “뚝! 자꾸 울면 달문 데려온다”라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세상에 달문만큼 흉측한 얼굴을 한 사내는 없다고 한다. 입은 쭉 째졌고, 코는 뭉툭하게 주저앉았다. 게다가 수표교 아래에 사는 거지이다. 누구라도 좋아할 까닭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모독은 그런 달문을 실제로 보고 싶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달문을 만나게 된다.


모독은 달문을 따라 거지들이 있는 수표교로 간다. 달문은 거지 왕초답게 다른 거지들이 얼마나 동냥을 해왔는지 살핀다. 그런데, 여기서 희한한 일이 생긴다. 거지들은 자신이 얼마나 동냥을 해왔으며, 오늘 자신은 얼마만큼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초가 주는 대로 먹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만큼 먹고 싶은지 이야기 하는 것도 신기한데 오늘 동냥을 전혀 하지 못한 거지가 더 많이 먹겠단다.


달문은 다른 거지들에게 의견을 묻더니 그러라고 한다. 많이 얻어온 자가 많이 먹는 것이 공평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야기 속 모독도 이런 의문이 들어 달문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묻는다. 달문은 답한다. 거지는 사나흘을 굶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동냥을 못해왔더라도 거지 패거리 전체를 위해서는 그자가 먹고 힘을 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책
우리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꾸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한 명 있다고 치자. 그러면 교사는 그 아이를 야단친다. 그 아이는 야단맞는 것이 습관이 된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 아이가 야단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결국 문제아가 되고 만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보자.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를 혼내거나 훈육하는데 쓰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같은 반의 다른 아이들을 위해 쓰면 어떨까?

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북스피어 펴냄


모독은 인삼가게를 운영한다. 아버지, 삼촌도 인삼가게를 운영하며 제법 떵떵거리며 사는 집안이다. 모독이 달문을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게 한다. 어느 날 달문이 인삼을 어떤 방식으로 진열하는지 모독에게 묻는다. 모독은 가게 입구에는 싼 가격의 삼을 진열하고 안으로 들어올수록 비싼 가격의 삼을 진열한다고 한다. 달문은 자신에게 진열방식을 맡겨주면 안되겠는지 이야기한다. 모독은 미덥지 않지만 맡겨보기로 한다.


달문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진열한 것인지 모르게 인삼을 진열한다. 모독이 고개를 갸웃할 때쯤 깨닫게 된다. 달문이 진열한 방식은 인삼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이 삼은 어디에서 왔고, 그 삼을 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이런 종류의 삼으로 어떤 병증을 치유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모독의 인삼가게는 그날부터 삼이 모자라 못 팔 정도가 된다. 사람들은 인삼의 가격보다 달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부터 인삼은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의 백미는 달문이 임금 앞에 끌려와 국문을 받는 장면이다. 나라에 몇 년 째 흉년이 들자 달문은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고 전국을 돌며 광대놀이를 한다. 부자 마을에 들러서는 돈을 받고 광대놀음을 하고 가난한 마을에 들러서는 광대놀음도 하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준다. 나라에 몇 년 째 기근이 들자 역모를 꾀하는 무리도 생기게 되는데 그 무리들이 잡혀오고 달문의 동생, 달문의 아들을 칭한다. 결국 달문도 잡혀오게 되고 국문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임금이 친국을 하며 왜 백성들에게 공짜로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는지 묻는다. 그러자 달문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리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구상에 사는 동물 중 자신이 먹고 남을 것을 저장해 두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달문을 닮고 싶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달문을 닮았으면 한다.

심진규
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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