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하다 이제 명문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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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이제 명문고인가?
  • 충청리뷰
  • 승인 2018.12.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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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윤 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방송에서 봤을 땐 늘 반대하는 모습을 봐서 이런 분일 줄 몰랐어요. 반가웠어요.”
위원회에서 만난 어떤 분이 헤어질 때 덕담을 건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뉴스 속 짧은 인터뷰에 등장하는 나는 늘 대립되는 시각의 한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언론은 늘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이쪽 저쪽 시각을 다루고, 시민단체는 대체로 집행부의 정책을 감시 비판하기에 자연스레 ‘악역’을 맡게 된다.

허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드러내진 않지만 활동가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다. 특히 학연과 지연이 얽혀 있는 좁은 지역사회인 경우에는 늘 ‘알만한’ 이해관계인이 개입되기 마련이니 스스로 왕따 아닌 왕따가 되어야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젊은 시절 내 꿈은 글쓰는 사람, 굳이 직업으로 얘기하자면 작가였다. 아이들을 키울 땐 동화작가를 꿈꿨고, 나름 발랄한 끼를 살려 꽁트작가가 되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지만 팩트에 기반해 설득력 있게 의견을 개진하는 보도자료나 논평을 주로 쓰다 보니 내 글도 건조해졌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경실련을 비롯한 건강한 시민단체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시민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관변단체와 다르기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들마저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단체장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역신문 1면에 실린 기사가 논란이 됐다. ‘반대에만 익숙한 충북, 사라진 담론’이라는 타이틀도 자극적이지만 시민사회의 반대 때문에 지역발전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은 지나치다.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핵심은 이른바 명문고로 불리는 ‘자사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 문제였다. 요약하면 이시종 도지사가 “KTX 오송분기역 활성화와 인구소멸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자사고 등 명문고를 유치하자는 건데 왜 반대하느냐는 논리였다. 그런데 선후가 바뀌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담론,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도지사가 밀어붙이는 행태에 대해 언론은 왜 비판하지 않을까? 과연 도지사는 명문고 설립이 공교육 정상화에 미치는 영향까지 심도있게 고민한 걸까?

어떤 학교인지 알 수 없는 ‘명문고’ 프레임은 마치 명품처럼, 우리 지역에도 하나 가져보자는 논리로 비화된다. 급기야 이 지사는 특유의 돌파력으로 충북교육청과의 고교 무상급식 협상에서 분담금을 인상하는 대신 “도교육청은 자율학교 지정, 명문고 육성을 포함한 다양한 미래형 학교모델을 창출한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전국적으로 폐지 수순으로 가고 있는 자사고라는 명칭이 부담스러웠는지 ‘자율학교’로 바뀌었지만, 명문고 육성이라는 목표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도교육청은 당초 “자사고 설립이 명문대 진학률 제고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일반고를 활성화해 수시모집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혀 왔는데, 과연 무엇이 바뀐 걸까? 난데없는 조건부 합의에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자사고로 상징되는 명문고 설립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흔히 아는 것처럼 해당 학교가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것이 아니다. 물론 차별화된 강의 시스템도 있겠지만 사실은 ‘준비된’ 우수 인재들을 독점하는 구조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시키고 경제력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는 귀족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목표가 특정 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라거나 장차 중앙정부에 포진할 고위관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생각해 보자. 과거 명문이었던 청주고-서울대 인맥이 고위관료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단체장도 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20년 후에도 그대로 이어가자는 얘기인가? 인구소멸 시대에 대비하는 처방이 결과적으로 인재 유출을 부추기는 명문고 설립인가?

3선의 관록을 보여준다던 이시종 도지사의 정책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선거 때는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정책을 보면 70년대 개발시대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이다. 지사 입장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같은 ‘지금이야말로’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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