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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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니
  • 충청리뷰
  • 승인 2018.12.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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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수 충북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한 해가 비워져가는 마지막 달이다. 망년회 등 각종 모임이 이루어지는 요즈음의 겨울밤은 도시의 전등 불빛에 까딱하면 정신을 붙들어 매어놓기 쉽다. 얼마 전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혼이 나간채로 이틀을 보낸 적이 있다. 얼마나 불편하던지 당해본 사람이면 안다. 모든 전화번호와 지인들에 관한 개인정보 등이 담긴 핸드폰은 정신과 육체에 심한 타격을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한 두 개에 불과했다. 이런 경험은 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신의 삶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삶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에는 대개 서너 명의 친구들과 가족 및 친인척들의 전화번호쯤은 알고 지냈다. 나는 분실된 핸드폰으로 인하여 간간이 찍어 놓았던 사진들과 친구들에 관련된 정보, 전화번호를 통째로 포기해야 했다. 핸드폰은 우리들의 삶에 관한 생생한 기록들을 원본으로 갖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 타인에게 무방비로 유출된다? 참으로 아찔한 일이다. 어떤 존재가 이토록 강력한 형태로 내 삶을 망가뜨릴 수 있을까?

물론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산업의 발달로 인간의 삶은 정말로 무섭게 향상됐다. 또한 정보사회로의 변화는 대량의 정보를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적은 노력과 짧은 시간에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왔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명의 이기는 풍족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인 부분이다.

이렇듯,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정보의 형태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형태는 결국에는 조종되어지는 인간의 생각과 육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유롭고 싶지만 기술의 굴레는 인간들이 느끼지 못하는 음흉한 속도로 인간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와 자리하고 있다. 선택할 수 없는 강요의 형태로 정교하고 치밀한 기술들은 우리의 생활을 거미줄처럼 옥죄고 있다.

도시에서는 이미 우리의 행동거지를 카메라를 통해 기록한다. 우리의 대화는 녹음이라는 형태로 저장되어 영원히 기록의 장치가 동작할 수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다. 보안시스템이라는 문명의 이기들은 사회의 안정과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이라고들 언급한다. 그러나 정보는 칼의 양면과 같아서 나를 보호하는 모습일 경우도 있지만, 나에 관한 정보는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늘 존재하던 것들의 의미를 경악스러운 놀람으로 깨닫게 된다.

우리는 편리를 도모한다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우리의 자신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리성과 다양한 정보의 홍수에서 우리는 어쩌면 질식되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위정자는 구성원들에 대한 통제가 더 쉬워지고, 정보를 갖은 자는 권력에 보다 더 가깝게 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비밀스런 정보들이 스멀스멀 빠져나가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역으로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기술로서 다양한 형태로 적용된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기술은 피상적인 이론이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기술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다. 그러한 선행된 기술 위에 인간의 이해가 더해지고 해석되어 왔던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편리성을 제공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인간이 그 편리성에 노예가 되는 현상으로 기술에 인간의 종속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마약과 같은 기술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인간이 불행해지는 요소이다. 기술의 발달은 기회이자 위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이 가져 오는 부차적인 위험성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를 지켜 줄 방어적인 시스템에 대하여 더 연구하고 개발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가져오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에 대한 어떠한 대응책은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저 우리들 각자가 그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신기하고 편리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선택적 방어권이 존재하지 않는 한, 새로운 최첨단의 기술은 더 이상 행복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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