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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산운’의 바로 그 작가김준권 판화가, 20여 년간 진천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유홍준 미술평론가 “김준권은 다색목판화의 달인”
김준권 판화가


충북 진천군에는 백곡저수지가 있다. 겨울 저수지에는 본연의 모습만 있었다. 저수지를 풍성하게 꾸며준 봄 꽃이나 가을 단풍이 사라지자 간결함만 남았다. 앙상한 나무와 물,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들이 아름다웠다. 백곡저수지에서 조금만 더 가면 김준권(64) 판화가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아침마다 이 저수지에서 산책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백곡저수지의 간결한 선이 김준권 판화가의 작품에 녹아 있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판화가가 충북 진천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진천에 터를 잡은지 20여년 됐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송리로 들어간 것은 10년이나 됐다. 고향을 따지는 건 우습지만, 이제는 충북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을 다닌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를 받고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1992년 진천에 정착한다. 고향은 전남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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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작 ‘한양천도’ 작업 중
     

    김준권 판화가의 작업실 겸 집은 맨 꼭대기에 있었다. 1층 작업실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다. 1300년대 정도전이 설계한 ‘한양천도’를 목판화에 새기는 중이었다. 작품 크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대작이었다. 완성되면 서울역사박물관에 걸린다. 35년 경력의 판화가는 또 어떤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 평화의집에는 김준권 판화 ‘산운(山韻)’이 걸렸다. 이 작품으로 유명해지긴 했으나 그는 이미 수묵 목판화로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그렇다고 이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행사에서 처음으로 그림이 화제가 된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 그는 2009년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 48개 목판에 먹물을 묻혀 찍어냈다고 한다. 한반도의 산하를 담기 위해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5번이나 답사해 한반도를 잇는 백두대간을 형상화하는 작품을 마침내 만들었다. 이것이 ‘산운’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한반도의 곳곳에 겹겹으로 이어진 산은 그렇게 어머니의 품속처럼 우리 역사를 품고 있다. 끊긴 그 허리가 다시 이어진다면 강물은 흘러야 하고, 산은 이어져야 한다. 백두대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근경의 양 옆이 치솟은 U자형으로 고갯마루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자세”라고 썼다. 이 작품은 10년전에 탄생했으나 내용을 알고보니 남북정상회담에 이 보다 더 잘 맞는 작품은 없을 듯 하다.

    그의 작업실 2층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작가는 지난해 9월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에서 ‘나무에 새긴 35년’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두툼한 작품집도 냈다. 그동안 약 40회의 개인전과 셀 수 없이 많은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한 그의 역사가 작품집에 오롯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던 그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판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선전 선동을 하기 위해 글과 그림이 필요했고 이 때 도구로서의 판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들어 판화를 제대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가 일찍이 목판화가 발달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수많은 경전들이 목판화로 제작됐다. 751년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팔만대장경, 대동여지도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와 사라졌던 전통방식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먹으로 찍는 방식이다. 유성으로 찍는 방식은 산업혁명 이후에 나왔다.”

     

    사계절이 오롯이 살아있는 작품들
     

    여기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황정수 오마이뉴스 기자는 김준권 판화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수묵 목판화라는 말은 한국미술사에 없었다. 김준권 작가가 전통 목판 작업을 현대화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고, 세상에 유례없는 양식을 만들어 수묵 목판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초기에 굵은 선으로 대상을 단순화해서 묘사했다. 당시 목판화는 사회운동과 함께 하며 사회참여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어 그는 “김 작가는 한·중·일 동양 삼국의 목판화를 연구한 뒤 장점을 모아 새로운 한국 목판화를 이루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있다. 한국의 산야를 자세히 묘사하던 그의 작업은 단순해지고 색감이 점차 밝아져가고 있다”고 ‘나무에 새긴 35년’ 작품집에 썼다. 김 작가는 지난 2016년 겨울에는 ‘광화문 미술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운동을 벌였다.

    그는 1994년 중국으로 건너가 루쉰미술대학에서 4년간 공부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목판화를 연구했다. 그 대학에서 명예 부교수도 지냈다. 그리고 돌아와 진천에 한국목판문화연구소를 만든다. 이 연구소는 지금도 있다. 큰 길에서 그의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우회전하는 길에는 ‘한국목판문화연구소’라는 작은 팻말이 서있다.

    김준권은 전업작가이다. 한 때 미술교사를 했으나 이제는 작품만 한다. 전업작가가 몇 안되는 현실에서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1990년대에 색이 들어간 그의 판화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흑백 판화의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 색을 쓴 것도 김준권 작가가 처음이라고 한다. 유홍준 미술평론가는 “김준권은 다색목판화의 달인이라고 할 정도로 다색판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 목판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강점을 한껏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아스라이 보이는 능선, 안개를 머금은 저수지의 아침, 나무가 가득한 숲, 청년처럼 씩씩한 여름바다가 있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단풍, 흰 눈으로 덮인 하얀 겨울이 있다. 사계절이 다 있다. 그는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더니 ‘황금돼지-평화원년 2019’라고 찍은 새해 연하장을 불쑥 건넸다. 본지는 새해들어 김준권 판화를 매주 싣기로 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때 평화의집에 걸린 작품 ‘산운(山韻)-0901’ Ed. 6, 400×160cm, 水墨木版 2009년 작

    홍강희 기자  tankhong@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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