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으로 세 번 이삿짐 싸는 입동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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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사업으로 세 번 이삿짐 싸는 입동리 사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02.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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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17전투비행장, 90년대 청주공항, 이번엔 항공산업단지
입동리 32가구 80‧90대 노령가구들 대다수…삶의 터전 빼앗겨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입동리 주민들은 ‘세 번째’이삿짐을 싸게 됐다. /사진=육성준 기자

입동리 마을회관에서는 연일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세 번째’이삿짐을 싸게 된 주민들의 대책회의가 열린다. 칠판에는 항공산업단지 조감도가 프린트로 돼 있고, 그 아래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다. 모인 이들은 80~90대의 어르신들. 이 동네에선 젊다고 해도 50대 후반이다.

입동리 마을 32가구는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또다시 빼앗기게 됐다. 1976년 17전투비행장이 건설되면서 민씨 집성촌으로 불렸던 ‘민마루 12마을’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자연마을인 중리, 선바위, 안골, 신안, 북당 등등에 살던 이들은 당시 청주 복대동, 신안, 중리 등으로 흩어졌다. 그 때 500만원이 있으면 청주 복대동에 건물 한 채를 샀다. 돈이 있는 사람은 청주시내에 빌딩을 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전투비행장 인근으로 이사를 했거나 이주자단지였던 신안과 중리에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1991년 청주국제공항이 건설되면서 또다시 이삿짐을 싸게 됐고 지금의 입동리로 모였다.

입동리 마을 곳곳에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이주할 때마다 늘어난 빚

 

민권식(75)씨는 고향인 서당매에서 살다 중리로 이사했고, 입동리로 다시 옮겨왔다. 옮겨올 때마다 이주자단지에 살기 위해 빚을 냈다. 민 씨는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아예 받지도 못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3명이 연대보증을 선다고 하니까 그제야 농협에서 대출을 해줬다. 대출금을 10년 넘게 갚으니 또다시 공항건설로 이사를 가야했다. 입동리에 오면서도 대출을 또 받았다.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 제발 빚 없이 지금 살던 집 그대로 옮겨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입동리 32가구 가운데 15가구 이상이 두 번 이상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사업으로 이삿짐을 싸고 풀었다.

무대미술제작자인 민병구 씨 또한 조상대대로 살던 이곳에 터를 잡고 전국단위 공연에 작품제작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평생의 업이었던 무대미술제작까지 접어야 하나 절박한 심경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무대미술제작자인 민병구 씨 또한 조상대대로 살던 이곳에 터를 잡고 전국단위 공연에 작품제작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 쫓겨날 처지가 됐다. 민 씨는 “2004년에 평당 16만원에 산 500평 땅을 작업실로 쓰고 있다. 15년이 지났는데 평당 40만원을 준다고 한다. 이 돈으로 청주시내 어디 가서 이만한 평수의 작업장을 얻을 수 있나. 세를 400~500만원 씩 내면서 무대미술을 제작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평생을 업으로 해 온 일도 접어야 할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 씨는 국민신문고에 입동리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을 올렸다.

이어 그는 “계속된 이주로 살림이 쪼그라들었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 대출금을 갚다 청춘을 보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적은 보상금이나마 받고 떠났지만 여기 남아있는 이들은 정말 가난해서 갈 곳이 없다.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이 구십을 바라보는 분들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떠들어대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아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1월 28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입동리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 2가지다. 현실적인 보상가액 제시와 이주자 단지 조성이다. 쉽게 말해 ‘빚’안지고 같이 모여살 수 있는 터전을 사업주체에서 제공하라는 요구다.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청주시와 충청북도경제자유구역청 또한 이 같은 사연을 알고 있지만 뾰쪽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이주단지 약속했지만 ‘불발’

 

2016년 4월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위한 첫 주민설명회가 열렸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파행됐다. 당시 시는 공원부지였던 내수 원통리 120평 땅을 이주단지로 조성해 저렴한 값에 입동리 주민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장 명의로 된 공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철석같이 믿었던 원통리 행이 불발됐다는 사실을 지난해 가을에야 알게 됐다. 현행법에서 시유지나 도유지의 경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의해 이른바 수의로 분양하는 것은 불법이다. 분양공고를 내고 법원공매를 통해 입찰해야 한다.

주민 채선병 씨는 “청주시내는 입동리보다 땅 값이 몇 배 비싸다. 일반 땅은 기반시설을 해준다고 해도 보상액을 얼마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주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나. 감정평가가 보통 40만원 선인데 몇 번 이주를 경험했던 터라 제 집만 겨우 갖고 있다. 1억원도 보상 받지 못하는 가구가 대다수다. 공공사업으로 세 번이나 쫓겨나게 됐는데 빚을 또 져야 한다니 너무 억울하다.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라”라고 촉구했다.

입동리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의 감정평가액은 보통 40만원 선이다. 주민들은 “10년 째 공시지가를 올리지 않았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법률에 따르면 입동리 주민들은 감정평가에 따른 보상액 외에 이주정착금 1200만원, 이사비용 500만원, 농지경작피해보상금 정도를 받는다. 이 법 자체가 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것이어서 주민들의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청주테크노폴리스 지구단위 개발로 강제 이주하는 내곡동, 외북동, 화계동, 송절동 주민들 또한 같은 처지다.

사업을 시행하는 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이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관련 법과 조례가 없어서 답이 없다.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조례를 만들고 싶지만 상위법과 충돌되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렵다. 보통의 산업단지 조성 사업에서는 이주민들을 인근으로 이동시키는 데 이곳 주민들은 비행기 소음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원해 더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답했다.

주민총회에서는 지구지정 반대까지 요구하는 상황. 감정평가도 일부 농토에 대해서만 했다. 사업주체는 주민들이 비행기 소음에 수 십 년 째 시달린 특수한 지리적 여건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적어도 3월말 까지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답했다.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은 적어도 올 해 말까지는 착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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