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대화,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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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대화, 김우중
  • 충청리뷰
  • 승인 2019.02.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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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이 글이 작성된 것은 북미정상회담 하루 전이고, 신문이 인쇄되어 독자들에게 배포된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직후다. 때문에 제 아무리 시의(時宜)를 맞춘다고 해도 이번 정상회담의결과를 얘기하는 건 무리다. 다만, 김정은과 트럼프의 극적인 대화가 몰고 올 여러 가지 반향은 예측가능할 수 있겠다. 그 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이든 아니든 말이다.

북미간 2차 정상회담과 관련된 숱한 억측들 중에서도 근자에 유독 관심을 끈 게 하나 있다. 미국이 내심 바라는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는, 생뚱맞은 가설이다. 이는 기회있을 때마다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면서도 그의 입에서 잊을만 하면 터져나오는 중의적(重義的) 언사, 즉 서두르지 않는다든가, 서로 사랑한다든가 등 등 트럼프의 변화무쌍한 화법과도 맥을 같이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인민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정상회담의 최대 과제인 김정은으로선 핵무기를 포기하는 비핵화는 쉽게 결단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3대 세습이라는 세계 초유의 독재국가 체제 때문이다. 북한이 개방되어 경제가 좋아질수록 현재의 북한체제는 필히 위험에 처하게 된다. 경제발전이 곧 한 국가의 민주화를 촉발시킨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핵은 북한과 김정은에겐 체제수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아는 트럼프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사거리 5500km 이상의 ICBM만을 폐기시키고 중단거리 미사일은 유지시켜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북한은 현재 중국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단계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언젠간 미국의 대(對) 중국 견제에 지렛대로 역할할 수 있다는 논리가 심상치 않게 제기된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챙길 것은 베트남 사례와같은 북한 경제개발의 ‘키’를 쥐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결국 여기에 장사꾼 트럼프의 더듬이가 맞춰졌다는 가설이 급부상했다.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베트남의 동질성이 곧잘 거론되고 있지만 국가 체제만을 본다면 베트남은 1당 사회주의 권력구조이면서도 경제에서는 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북한과는 달리 권력의 특권층이 없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 경제발전에 베트남이 롤모델이 된다는 것도 지금으로선 분명 한계가 있다. 때문에 향후 북한문제는 순전히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현상에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에겐 이미 잊혀진지 오래인 대우 김우중이 베트남에선 여전히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김우중은 다 안다. 베트남인들은 자기나라의 경제부흥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김우중이라고 거리낌없이 얘기한다.

김우중이 누구인가. 1975년 통일 이후 사회주의적 공동경제체제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된 베트남은 1987년 시장개방과 해외자본 유치를 골자로 하는 도이모이(DOI MOI)를 천명하지만 해외기업들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대우 김우중은 1989년 15억 달러라는 통큰 투자를 결정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동안 눈치만 보던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도 베트남진출에 뛰어든다. 지금의 베트남 경제는 바로 대우와 김우중으로부터 발아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김우중이 베트남에 대우전자, 대우은행, 대우호텔, 대우버스 등을 세우며 이른바 대우왕국을 건설한 것이 국가경제를 근본적으로 이끌었다고 베트남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지금도 베트남의 대규모 개발사업은 대우건설이 주체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우보다 한참 늦은 1995년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은 현지에 휴대폰과 세탁기, TV 생산기지를 구축함으로써 현재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베트남 경제에 있어 한국과 베트남은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1998년 IMF환란 속에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김우중은 2006년 경제사범으로 몰려 구속됐다가 사면된다. 최근에는 고령(만 83세)에다 지병으로 국내 병원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 김우중이지만 베트남인들은 이렇듯 흔들림없이 그를 추켜세우고 있다.
구 소련이 붕괴될 시점인 1991년, 김우중이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 세계여행을 함께하며 둘이 나눈 대화를 단행본으로 엮은 <대화>라는 책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다. 당대 최고로 잘 나가는 기업가와 최고 철학자의 의도된(?) 대화라는 점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이 책에 ‘대화는 사회변혁의 힘’이라는 전제로 이런 말이 나온다. “근원적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 오로지 과격한 방법에 의한 급진적 변혁에의 갈망이 역사적으로 표출된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 불럭의 붕괴는 오로지 권력의 교체만으로는 그 사회의 모습이 정당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실증한 것이다. 즉 인간의 대화가 부재한 체제만의 변화는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함장하고 있다.

김우중은 바로 이같은 ‘대화’를 통해 베트남의 경제를 열었고, 김정은 역시 변혁에의 갈망이 급진적으로 표출되어 만들어진 지금의 북한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뉘늦게나마 최대 적대국인 미국과도 ‘대화’에 나서고 있다. 이 대화는 곧바로 남북간으로 이어져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끝에는 반드시 베트남의 김우중처럼 한 기업인이 우뚝 서게 된다. 그가 현대의 고 정주영이 될 수도 있고 북한 제재가 풀리면서 북으로 내처 달려갈 또 다른 기업인이 될 수도 있다. 박왕자 씨 피격 전까지 5년동안 금강산에서 통일마라톤을 개최해온 충청리뷰가 확인한 것은 소떼를 몰고 방북해 북한에 새바람을 일으킨 정주영에 대해 북한인들은 여전히 추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로지 권력의 교체만으로는 그 사회가 정당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진리를 지금의 우리나라 통치자들과 정치인들이 제발 좀 깨우쳤으면 한다는 것이다. 대화(對話), 그 것도 김정은이 세계 최고 군사강국이라는 미국과 맞짱을 뜨며 이를 풀어냈으니 이제부터는 한반도 전체에 진정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의 주인은 순수 한민족이지 외세에 기생해 반세기가 넘도록 이 나라를 지배하고 횡행해온 친일, 친미분자들이 아니다. 바로 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기의 대화를 흠집내려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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