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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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빨갱이
  • 충청리뷰
  • 승인 2019.03.0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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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빨갱이’를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이런 발언이 국민들을 또 이분법으로 갈라놓을 수 있다고 우국충절을 설파한 것도 부족해 진짜 빨갱이를 이제부턴 빨갱이로 부를 수 없게 됐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날 문 대통령은 (사람에게) 빨갱이의 낙인을 찍는 것은 친일의 잔재라며 이제 100년 묵은 혐오의 굴레를 벗자고 호소했다.

인터넷에서 빨갱이를 검색하니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해석 되어 있다. 이 것만 보면 빨갱이는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믿는 사람들이지 ‘반드시 죽여 없애버려야 하는’ 인간말종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세기가 다 되도록 빨갱이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살아서는 안될 극악의 생명체로 인식돼 왔다. 그렇다면 빨갱이는 왜 이렇듯 타락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은 ‘빨갱이’ 유래를 이렇게 풀이했다. “빨갱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깔인 빨강 혹은 적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빨갱이’는 항일 유격대원을 지칭하는 빨치산에서 나왔다. 당시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많았고, 거기서 이어져 한국전쟁 때 공산당 유격대원도 빨치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말이 나중에는 공산주의자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세상을 바꾸는 언어>

이 정도만 해도 빨갱이는 단어로서의 그나마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항일유격대를 의미한다고 했으니 이념을 떠나서 받아들인다면 되레 나라를 지킨 이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빨갱이’가 우리사회에 본격 등장한 것은 해방정국에서의 이승만 등장부터다. 이 때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게 아니라 미 군정과 친일파를 반대하고 이승만 정권에 어깃장을 놓는 세력에 씌워지는 기미( ) 즉 굴레로 왜곡됐다. 친일파 청산을 입에 올렸다가는 곧바로 ‘빨갱이’로 매도당해 탄압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러니 김구조차도 빨갱이로 둔갑한 것은 당연지사다.

그 때의 상황에 대해 사학자 김득중은 저서 <빨갱이 탄생>에서 이렇게 썼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 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 우리나라 빨갱이 역사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이승만은 실은 국민을 자의적 이념으로 이간질한 것도 부족해 한국전쟁과 보도연맹사건 등을 통해 무수한 양민을 살육한 원흉이었다. 그 DNA의 본류가 다름아닌 친일인 것이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매도하며 우리민족을 갈라놓으려 했고 바로 이 것이 해방 이후 ‘빨갱이’로 전이되어 현대사의 고비마다 온갖 민족적 비극을 야기한 주범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에 있어 가장 큰 적폐는 친일의 잔재이며 이 것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국민들에게 씌운 빨갱이의 굴레도 벗어날 수 있다며 19대 대통령 문재인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뒤늦게나마 국가적 화두로 던진 것이다.

어쨌든 친일은 흔들림없이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충청리뷰 자매지인 ‘충북인뉴스’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기사를 봐도 우리 주변의 하찮은 곳까지 여전히 친일의 잔재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참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유는 분명하다. 친일청산을 하나도 못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유럽국가는 나치부역자들에게 가혹한 철퇴를 내린다. 국가적 잘못으로 외세의 지배를 잠시 받을 망정 그 것을 영속화할 수는 없다는 신념에서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단언한 프랑스의 드골부터 냉엄하게 칼날을 세웠다. 나치부역자 7만여명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6700여명을 사형시켰는가 하면 다시 수만명을 투옥과 강제 종신노동형에 처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다른 국가들도 이 대열에 동참해 나치 부역자들이 다시는 지배세력으로 부상할 수 없도록 단죄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프랑스가 나치에 부역한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제1의 숙청 대상으로 응징한 것은 지금까지도 역사적 사건으로 거론된다. 언론인은 양심과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더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면서 부역 언론인을 ‘매춘 언론인’으로 규정하고 혹독하게 죄를 물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반민특위의 활동 결과는 고작 실형 7명, 집행유예 5명, 공민권정지 17명이었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7명은 이듬해 모두 풀려났고 반민특위 자체도 불과 1년만에 친일세력으로부터 갖은 음해와 공격을 받아 해체된다. 물론 그 선봉은 이승만이었다. 나치지배를 5년받은 유럽국가들과 일제 지배를 36년간이나 받은 대한민국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이렇듯 간극이 크다.

문제는 그 친일의 후세들이 대를 이어 이 나라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로서, 이는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말 그대로 일제시대 친일분자들의 2대에 이어 3대들까지 정치권과 지배계층에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군대도 빠지고 툭하면 극우논리를 부추기며 빨갱이 타령을 즐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간담회에서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친일의 몰역사성에 노골적인 불편함을 드러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일제에 부역한 언론이 지금까지도 버젓이 살아남아 오히려 민족지 행세를 하고 있다. 프랑스 같았으면 단두대에 올랐을 언론사와 언론인들이다. 문제 언론사들의 최근 행보도 예의 친일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이들 언론사들은 회담의 과정과 결과를 흠집내는 데 혈안이 됐고 이는 회담결렬에 쾌재를 불렀을 일본과 아베총리를 연상케 했다.

친일청산은 이제 늦어도 너무 늦었다. 국민들의 총체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처벌은 못하더라도 그들의 후예가 여전히 나라의 지배세력과 기득권으로 횡행하며 빨갱이 타령을 계속토록 하는 것은 더 이상 안 된다. 역사에 또 다른 죄를 짓게 된다.

대통령의 입에서 국가적 공적인 자리의 금기어와도 같은 ‘빨갱이’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언급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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