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를 준비하며…
상태바
떠날 때를 준비하며…
  • 충청리뷰
  • 승인 2019.04.03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다른 건 다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싶어도 김의겸의 추락은 아닌 것같다. 마지막까지 그는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며 아내 탓을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김의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주제에 괜한 오버를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구는 진보의 도덕주의를 우려하더니 급기야 수구언론은 ‘진보 꼰대들의 파렴치한 이중성에 2030이 열받았다’고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진보의 도덕적 강박증세나 진보에 대한 20~30대들의 배신감에서 혀를 찰 일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진보도 부동산 투기든 뭐든 재테크를 할 수밖에 있다. 현실이 그렇잖은가. 때문에 나는 김의겸 사태를 순전히 개인의 일탈과 착각으로 여기고 싶다. 안 그러면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기 위한 노후대비”라고 하면서도 10억원의 대출을 그렇듯 쉽게 입에 올릴 수는 없다. 은행 대출 10억 원을 끼고 서울 흑석동 재개발 부지내 25억 상가주택의 속칭 ‘딱지’를 매입한 시기 또한 문재인 정권이 한창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치르던 2018년 7월이었다. 서민들은 10억원이 아니라 1000만원, 500만원을 빌리려도 갖은 수모와 서러움을 겪는다.

결국 본인의 말대로 까칠한 성격이어서, 최순실을 특종보도한 전력으로 누구보다도 믿음이 갔던 김의겸의 변신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그는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떠나려고 하니 출입기자들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것 역시 잘못됐다. 그냥 ”선배로서 미안하게 됐다“고만 했으면 됐을 일이다.

그는 언론인으로 남기를 원했던 후배들이 극구 말렸지만 청와대가 부르자마자 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소신을 밝혔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공감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잘 전하는데 헌신하겠다고... 하지만 결과는 그가 따르겠다던 대통령까지도 조롱거리로 만들었으니 청와대 후배기자들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 그랬으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어야지 “시세차익이 나면 한턱 쏘겠다”고 염장을 질렀으니, 후배들의 머릿속엔 자본에 휘둘리고 권력에 순치되고 마는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 그 추함이 또 한번 그려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은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일들이 주변에 자주 일어난다. 현역시절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용기있던 이들이었는데 같이 연차가 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덧 간부와 임원으로 활동하나 싶더니만 갑자기 해임되고 쫓겨나는 옛 동료들, 명예로운 퇴직은커녕 현업에서도 자본에 눌려 전전긍긍하다가 하루아침에 내침을 당하며 속절없이 사그라드는 그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평생의 업이었는데 마무리를 꼭 저렇게 해야 하느냐는 자괴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겠다.

그럴 때마다 나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이젠 평생 직업으로서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나이가 꽉 차고도 훨씬 지나칠 정도로 자리를 지켰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평탄치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나와 같이 조직을 함께 한 이들에게 한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박수칠 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곧추세우게 된다. 평생 돈과 가까이할 수 없는 생활로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막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신념으로 버텨온 만큼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노후를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은 얼마전 보름동안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다짐하게 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때로는 고산증세로 죽음까지도 엄습케 하는 대자연을 접하면서 과연 인간의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이 것을 가지고 벌이는 아귀다툼 또한 어디까지가 의미있는 것인지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집착하지 말아야지, 순리대로 살아야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건강과 마음의 여유는 필수, 하여 후반기 인생에선 내가 주인이고 주체임을 실천하며 살아야지....

떠남을 준비하려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종이신문이 언론의 대세일 때 발을 들였으나 지금은 그 종이신문이 자꾸만 설 땅을 잃어가는 시대, 그래도 전통의 종이신문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흔들림없이 자위하며 호흡이 긴 글을 써왔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첨단과 디지털의 세계에선 어쩔수 없이 괴리를 직감하게 됨을 고백한다. 언론의 실효성보다는 실용성 측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언론매체로서의 신문역할이나 본질이 변질됐다거나 훼손되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표현의 수단과 전달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너무 기계적이고 반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언론의 한계이기보다는 언론의 편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동조이고 그러기에 앞으로의 책임과 주도권은 젊은 후배들의 몫이라는 것일 뿐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비록 떠나더라도 솔잎만 먹던 송충이의 근성은 절대 버리고 싶지 않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그러면 지금 떠남의 준비가 그리 허망하거나 황망하지만은 않을 게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