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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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34회>
  • 이상훈
  • 승인 200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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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서른네번째이야기
"자, 기왕에 들어왔으니 그토록 궁금하게 생각했던 이곳 내부를 휘휘 둘러서 구경 좀 안하시려우? 내가 어렸을 때 무예수업을 받았던 바로 그곳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생겨먹은 곳이니 솔직히 볼만한 게 별로 없을 것이고 따라서 실망이 몹시 크실테지만...."

벌구가 여우리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왜요?"

"우리 두 사람은 이곳에서 얼른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만 할 테니까요."

"아, 아니... 그그게 무슨?"

벌구는 여우리가 지금 하고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기에 퍽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그녀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 어서 나가기나해요. 자!"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어가지고 벌구한테 자기를 어서 업어보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어, 어라? 아니, 지금 엉거주춤 서가지고 대체 뭐하는 행동이오?"

벌구가 물었다.


"어머머... 보시면 몰라요?"

"그럼, 지금 날 더러 업으라구?"

벌구가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래요. 저 혼자만 계속 손해를 불 수는 없잖아요? 벌구님이 아까 제 옷을 일부러 개울물에 흠뻑 적셔지게 해놓았다는 걸 고백하신 이상 저는 그에 대해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 같은 것을 받아내야지요."

여우리가 벌구를 예쁜 눈으로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허허허... 나같이 피끓는 젊은 사내치고서 자기 또래 예쁜 처녀 업어주는 걸 굳이 마다하거나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소? 그런데... 업어주는 사람이야 문제도 아니겠지만, 업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조금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어머머! 그런 건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고 얼른 저를 업어주기나 하세요. 그리고 저를 업은 채 벌구님은 아까 그 개울물까지 쏜살같이 뛰어내려가시는 거예요. 벌구님! 아셨죠? 높다란 검은바위성 꼭대기까지 후다닥 뛰어올라갔다가 다람쥐처럼 가볍게 내려오는 솜씨로 보아하니 저를 업고 그곳까지 달려가는 건 벌구님에겐 아예 일도 아니겠어요."

"아, 알았소! 여우리 당신이 모종의 각오만 단단히 되어있다면, 그리고 그리 언짢게 생각하지 않아준다면, 내가 당신이 원하는대로 당신을 업은 채 아까 그 개울물까지 후다닥 단숨에 뛰어내려가 주리다."

벌구는 이렇게 말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처녀 여우리를 기분좋게 덥썩 업었다.
물론 대강 예상은 한 것이지만, 그녀의 크고 보드라운 두 육봉(肉峰)이 자신의 널찍한 등판 위에 완전히 짓뭉개지듯이 찰싹 와닿으니 벌구로선 기분이 째어질 듯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달려보겠습니다!"

벌구가 고개를 슬쩍 돌려 자기 등에 업힌 여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어, 그런데, 벌구님!"

"왜요?"

"저를 이렇게 업고 달리실 때 벌구님께선 두 손의 손가락 위치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 주실 거지요?"

"아아니, 그, 그건 무슨?"

"옛날 벌구님 아버님께서는 그 여자분을 업고서 달리실 때..."

"아, 그, 그만! 그만하세요!"

갑자기 벌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머! 왜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화부터 내시고 그래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요? 제 아버님의 위신에 손상이 갈만한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마시라구요!"

"알 알았어요. 그때 벌구 아버님께서 군자다운 행동으로 여자를 업고 달렸다는 말을 그럼 하지 않기로 하겠어요."

"으음... 그, 그럼... 부전자전이란 말이 나오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어요. 사실 남자가 여자를 업을 때 편안하게 해준답시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주지만 않는다면 아무 별일도 없는 거예요. 자, 그럼...."

벌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우리를 등에 업은 채 검은바위성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우리는 혹시나하는 생각에서 뒤를 얼른 돌아보았지만 그들이 빠져나온 검은바위성의 입구는 마치 물을 퍼내갔던 자리가 도로 메워지듯이 감쪽같이 원상태로 되어져있었다.

휙, 휙, 휙....

예쁜 처녀를 등에 업고 달려가는 탓인지 벌구의 몸은 아까 혼자 달릴 때보다도 오히려 더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저어, 벌구님!"

등에 업힌 여우리가 벌구의 귀에 대고 말했다.

"왜요?"

"저, 지금 이런 상태로 아까 제가 하려고 했던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볼까요?"

"그렇게 하세요. 아, 그런데, 가급적 빨리 중요한 것만 탁탁 찝어서 말씀해 주실래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기에 아버님 얘기를 들을 적마다 제 기분이 자꾸만 울적해지니까요."

"네. 그럼, 벌구님이 원하시는대로 중요한 것들만 탁탁 찝어서 말씀드릴께요. 그때 벌구 아버님께서는 이곳에서 오래동안 부부로서 머무를 수있을 만한 처지가 못된다고 여자분께 솔직히 말씀드렸다지요. 하지만 그 여자분은 흔쾌히 대답하셨답니다. 신분이 워낙 미천한 까닭에 자기를 데려가줄 남자는 없고, 그래서 하늘말촌 촌장 따님의 시중만 평생 들다가 결국 늙어서 죽을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자기를 거둬줄 남자를 만났으니 너무너무 기쁘다고요. 그때 두 분은 깊은 산속 폭포수 아래에서 깨끗이 몸을 씻고나서 마침 주위를 지나는 토끼 한마리를 잡아 제물로 삼고는 서로 맞절을 하며 비록 짧은 기간 일지라도 금슬 좋은 부부로 지낼 것을 천지신명앞에 굳게 약속하셨더랍니다. 산중턱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 신혼 살림을 차리고 벌구아버님께선 산짐승들을 잡아다가 인근 동네에 가서 농부들이 농사지은 쌀과 채소, 그리고 어부들이 잡아온 생선들과 맞바꾸어 오손도손 살아갔더랍니다. 두 분에겐 이때가 평생 잊지못할 행복한 순간이셨을 겁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난 여우리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려는듯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하늘말촌 촌장 따님은 질투심이 무척이나 강한 여자였대요. 자기를 무예에 능한 사내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일부러 열었던 무술 대회가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자기 여종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 꼴이 되었기에 몹시 속이 상해있던 중, 어느날 시장에 나갔다가 그녀로선 정말로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지요. 벌구 아버님과 그 여자분이 다정스럽게 마을 시장 안을 돌아다니는 걸 우연히 보게되었던 거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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