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리 은행정마을에서 일을 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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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리 은행정마을에서 일을 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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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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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 ‘은행정스테이션’

2014년 괴산으로 이사한 후, 나는 전업작가의 꿈을 꾸었다. 내 아이들이 읽을 역사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큰 꿈을 세우고, 가을에 이탈리아로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11살짜리 첫아이부터 4살짜리 막내까지 네 아이들과 지내며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업작가의 꿈을 잠시 보류하고 2015년부터 다시 일을 좀 해보자 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괴산문화원, 괴산도서관, 괴산청소년문화의집 등을 돌아다녔다. 두레학교 사무국장 친구가 지인들과 인사를 시켜주기도 했다. 이력서를 드리고, 이런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다 말씀을 드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때 마침 동인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 강사 모집 공고가 나서 지원했고, 3월부터 방과후교실 논술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함께 풍물패 벼리 동아리 활동을 하는 선생님의 소개로 명덕초등학교 돌봄교실 사물놀이 강습을 시작했고 2016년에는 괴산북중 사물놀이 강습, 두레학교 수업, 지역아동센터 전래놀이 수업, 문광면 주민자치센터 사물놀이 강습도 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수업 이외에도 두레학교 어머님들과 문화가 있는 날 문예지기 활동을 하며, 송평리 마을사람들과 은행정스테이션이라는 단체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도 진행했다.

2017년 10월 ‘은행정스테이션’의 선진지 견학

젊은 부부와 의기투합
지역문화진흥원(구 생활문화진흥원)은 2016년부터 전국생활문화제를 개최하며 생활문화센터 활성화 지원사업,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지역문화인력 지원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는 기관이다. 문화를 통해 일상에서의 문화적 삶이 개인과 지역 곳곳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북문화재단에서 문화코디네이터들에게 이런 지원 사업이 있다고 소개했을 때, 처음 지역문화진흥원에서 하는 생활문화공동체마을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마을에 새로 이사온 젊은 부부와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2016년 가을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하고 마을 분들께 식사 대접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송평리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들뜬 기분으로 마을분들과 무엇인가 재미난 일을 벌여보기로 한 것이다.

2017년 우리 은행정스테이션은 <은행정마을과 도란말의 신나고 재미난 마을만들기> 라는 제목으로 예비지원 500만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였다. 마을을 지나는 성황천 자전거도로를 염두에 두고, 나중에는 여행자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옥수수 와플같은 음식을 파는 자전거 쉼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은행정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제안은 내가 했지만, 젊은 친구가 단체 이름을 짓고 대표를 맡았다. 기획, 지원서 작성, 서류 정리, 정산 등의 실무는 내가 맡았다. 우리는 가을밤 은행나무 아래에서 영화를 보고, 아산으로 견학도 가고, 공연을 불러다 구경하고, 매번 함께여서 맛있는 밥을 먹었다.

‘가을밤 은행나무 아래서 영화보기’ 행사를 홍보하는 아이들

내가 할 수 있는 일 있어 감사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나서서 무언가 하자고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셨다. 특히 견학을 갔을 때에는 부녀회장 언니가 가장 좋아했다. 준비 안 해도 되고 그냥 따라만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며 정말 좋다고 했다. 점심 먹을 때에는 지원금으로 부족하지 않냐며 반장님께서 봉투를 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예산보다 넉넉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지원금이 부족하면 말하라고 말씀해주시는 이장님, 반장님 덕분에 늘 마음이 든든했다.

가을에 영화를 보던 날은 준비가 복잡하니 도시락을 시켜먹었다. 그동안 매번 부녀회장님과 노인회 총무님의 지휘 아래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던 과정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렇게 준비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처음에 상에 앉자마자 앞에 놓인 도시락을 보고 당황해하셨지만, 신기하다 하며 맛있게 드셨다. 언제 이런 것을 먹어보겠냐며 젊은이들 덕분에 호강한다 하셨다.(1인당 음식 양이 똑같이 정해진 도시락이라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서 이후로는 시도하지 않았다.)

2017년 11월 ‘은행정스테이션’의 마을잔치

생활문화공동체마을을 만든답시고 마을 상황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뭔가 해보겠다고 하니, 얼마나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까. 마음에 차지 않으셨겠지만, 이장님 이하 어르신들은 늘 고생한다 고맙다 해주셨다.

2017년 예비지원 이후 ‘문화공간 그루’ 일이 바빠져 ‘은행정스테이션’은 잠시 쉬고 있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생각이다. 지원금을 받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도 마을분들과 자주 만나고 마을회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부터 말이다. 괴산에서, 우리 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원 혜 진
‘문화공간 그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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