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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다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염 정 애 괴산 문광초 교사

2017년부터 정기적으로 매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선생님들과 비경쟁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있다. 비경쟁독서토론은 혼자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읽은 책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관계 맺기에 중점을 두는 토론방식이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주체적인 관심으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안전한 울타리 망의 역할을 한다. 우리 모임은 교원연구회 형식으로 진행되나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학부모에게도 열려져 있다.


3월 모임은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책으로 토론하였다.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부분에 밑줄을 그었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다. 이 날은 선생님들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었다.


  • 나이 듦에 대해 좋은 점도 많다면서 오히려 다시 젊었을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러고 싶지 않다 하셨다. 오히려 마음이 부서지고 또 부서진 현재, 지금에 이른 이 상태가 좋다 하신다. 이 날 모임에서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이 쓰신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책을 소개해주신 분이 있었다. 그리고 호주에서 개발된 안락사 기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우연찮게 지난 5월 유튜브에서 유성호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교수님은 우리 사회가 두렵고 무서운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나 이제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셨다. 자살한 사람들의 수많은 유서를 읽으면서 그들이 죽음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는 소통의 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셨다. 서점에서 교수님의 책을 바로 샀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에서 고려대 강선보 교수님의 ‘2018. 미국의 죽음교육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국외현황보고서를 읽었다. 미국은 죽음교육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여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고 있다.


    “죽음교육은 안락사, 낙태, 사형, 전쟁, 자살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규명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제 죽음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교육적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당 죽음교육 과제에 대한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이 요구된다”고 주장하셨다.


    사랑·동성애·성매매·다문화 등 다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읽으며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감성을 느낀 책이 있어 소개한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이다. 창녀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 아주머니와 자신의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 지으며 성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사랑, 동성애, 성전환, 성매매, 다문화, 늙음과 죽음, 안락사, 치매, 전쟁 등 많은 주제로 토론이 가능한 책이다. 착잡하고 어두운 슬픔을 다루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와 문장에 웃퍼서 뿜기도 하고, 늙음과 죽음을 목격하니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펴냄


    로자 아주머니는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수용소에서 살아났지만 여전히 히틀러를 무서워하고, 암을 무서워한다. 정작 아주머니는 암이 아닌 치매 환자가 되어 모모를 두렵고 무섭게 만든다. 엘리베이터 없는 7층에 사는 로자 아주머니에게는 지하에 자신 만의 비밀둥지가 있다. 모모는 어느 날 지하세계가 궁금하여 열쇠로 문을 열고 들여다보다가 로자 아주머니에게 들킨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둥지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에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죽음을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스레 배우고 느낄 수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무서움, 두려움이 존재한다. 모모가 로자 아주머니의 임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지막까지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였을 로자 아주머니를 위해 기품을 지켜드리는 행동은 슬프지만 고귀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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