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캐리커쳐 강사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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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캐리커쳐 강사로 살아남기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6.1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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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보고 직업 유추할 수 있다는 강소희 ‘캐리유’ 원장

“2003년까지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했다.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비디오가게에 가면 종종 찾아볼 수 있다”며 강소희(45) 원장은 자신이 참여한 애니메이션 <별주부 해로>를 소개했다. 그는 9년여를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하며 여러 작품에 참여했다.

청주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중인 강소희 원장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대형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했고 현장에서 그림의 기초부터 배웠다. 숨겨졌던 재능을 발견하며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해왔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강 원장은 “첫째 아이를 낳고도 얼마간은 프리랜서로 일했지만 일과 병행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점차 수작업은 없어지고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시기로 변할 무렵이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무렵 친동생은 그에게 캐리커쳐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캐리커쳐는 대상의 특징을 잡아 희극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함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던 친동생은 업계의 변화 속에 비교적 큰 캐리커쳐 회사로 이직했다.

청주에서는 좀 낯설지만 지금도 서울이나 대전 등에는 전문 회사들이 있다. 주로 명함용, 선물용 온라인 판매를 비롯해서, B2B(회사 간의 거래)로 각종 축제에 참여하는 일을 한다. 강 원장도 회사 소속으로 전국을 누볐다. 다양한 행사장을 다니며 하루에 100장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워낙 많은 사람들을 보고 그리다보니 지금은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직업을 대략 유추할 수 있다”며 남모를 직업병에 대해 멋쩍게 말했다. 서울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는 10년 전 남편의 직장 본사가 서울에서 오창으로 이전하며 함께 이사 왔다.

하지만 청주는 캐리커쳐 불모지에 가까웠고 직업으로 이어가기 힘들었다.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역축제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았다. 일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남편을 남겨둔 채 서울로 돌아갔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강 원장은 “저뿐 아니라 네 명의 딸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캐리커쳐 불모지인 청주에서 한번 직업 강사로 활동해보기로 했다”며 “큰 수익은 없지만 청주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그리며 소통하는 게 재미있다”고 서울에서 활동할 때와 다른 점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입소문을 탔다. 몇몇 학교에서 강의하고 주민센터, 노인복지관을 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청주에 부업이나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캐리커쳐 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얼마 전에는 사직동에 작은 공방도 열었다. 강의하느라 바빠서 일주일에 두 번만 문을 열지만 배우겠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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