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행궁, 이런 고민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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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행궁, 이런 고민을 해야겠지요
  • 충청리뷰
  • 승인 2019.06.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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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처음엔 무료입장이다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자 유료로 전환했다. 성인 기준 3000원이다. 지난해 1월 우리나라 산악지역 출렁다리로는 최장인 200m로 개통해 5개월만에 관광객 100만명을 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많을 땐 하루 1만여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소금강 출렁다리가 나오기 전인 2017년, 한 해 원주시를 찾은 전체 관광객이 225만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출렁다리 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한데 막상 가보니 실망이 컸다. 드넓은 주차장을 꽉 채울 정도로 지금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기대했던 스릴과 풍광보다는 고작 이 정도의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다니? 하는 불편함이 더 컸다.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그야말로 아찔한 출렁다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두 번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 보도를 보니 이런 우려들이 현실이 된 것 같다. 찾는 이들이 개통 초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인근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업소들이 매출추락으로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전국 최장이라는 타이틀로 한 순간 이목을 받는 데엔 성공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배후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전국 최장이라는 기록도 조만간 다른 지자체에 넘겨줄 판이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원주시는 추가로 소금산 스카이워크 브릿지를 만드는 등 출렁다리의 모멘텀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이다.

지난 4월 6일 국내 최장인 402m로 일반에 공개돼 역시 전국적 관심을 산 충남 예산의 예당호 출렁다리도 개통 보름만에 관광객 30만명을 기록해 예산군 출범이래 최고의 흥행사를 섰다. 그나마 이 출렁다리는 국내최대 저수지 위에 가설됨으로써 걷는 재미는 상대적으로 더하지만 이 곳 또한 지금의 인기를 언제까지 이끌어갈지 미지수다. 연계 관광이라고 해 봤자 인근에서 민물 요리나 한우고기를 맛보는 정도여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붙잡아놓기가 쉽지 않다.

소금산과 예당호의 출렁다리가 빅 히트를 치는 순간에도 관광객 유인을 위한 특단의 고민을 해야하는 이유는 똑같다. 이 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현지의 시설물, 현지의 사람들과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체험’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전국 출렁다리의 폭망조짐도 여기에 기인한다. 너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지자체표 미투(me-too)라 불릴만큼 현재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규모와 길이를 늘려가며 경쟁적으로 출렁다리를 건설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 것 하나만으로는 지속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논산의 선샤인랜드와 전주의 한옥마을은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의 촬영장을 조성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선샤인랜드가 탄생했지만 다른 관광명소와 다른 점은 이 곳에선 보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87억원이 투입된 촬영장의 반은 운영사인 SBS 관계사가 관리를 맡아 성인 기준 7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고, 절반은 부지를 무상 제공한 논산군이 운영을 맡아 무료로 입장케 한다.

초정행궁 조감도

이 곳 역시 지난해 11월 개장 이후 두 달만에 관광객 40만명을 기록해 이제까지 논산의 랜드마크였던 ‘논산훈련소’를 대체하고도 남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 비결은 우리나라 1950년대의 서울 풍경을 연상시키는 시설물 외에도 논산의 군 문화와 연계된 밀리터리 체험관 등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서바이벌 게임 등을 직접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선샤인랜드는 인기 드라마를 놓고 방송사가 지자체에 직접 투자한 새로운 모델이라는 점에서 ‘제빵왕 김탁구’와 ‘카인의 후예’를 찍은 청주 수암골이 이를 주제로 변신의 시늉만 내다가 거피 전문점들에게 대책없이 자리를 내어준 사례와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한 해 관광객 천만명 이상을 기록하는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역사성을 입히기엔 사실 부족함이 많다. 지금은 800여채의 밀집된 한옥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지만 원래 이 곳은 일제강점기, 지역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일본 상인들에 대항해 뜻있는 선비와 주민들이 나서서 조성한 마을이었다. 해방이후엔 전주고와 전주여고 등 명문고가 이 곳 중심으로 위치하면서 한옥마을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하숙과 자취의 명당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장년들에겐 아직도 추억을 자극하는 문화연필과 백양메리야스 공장이 이 한옥마을에 자리하면서 한 때는 제조업의 중심지로도 각인됐던 것이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한옥마을은 1996년 전주시가 2002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를 계기로 한옥보존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전주 한옥마을을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알리게 된 동기는 ‘한복 체험’으로 대표되는 각종 복식 이벤트다. 지금은 전국 곳 곳에서 이를 모방한 유사 관광상품들이 넘쳐나지만 어쨌든 방문객들의 ‘체험’으로 오늘의 자리를 굳힌 전주 한옥마을은 현재 지역의 대표음식은 물론 온갖 먹을거리와 즐길거리, 볼거리를 구분하며 차별화된 체험을 계속 개발해 나가고 있다.

얘기를 이렇듯 길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현재 한창 마무리공사중인 청주의 초정 행궁 때문이다. 1444년 세종이 눈병 치료차 초정에 행궁을 지어 123일간 머무른 역사를 재현하는 이 사업은 165억원을 투입해 총 35개 건축물을 짓는 것으로 대표된다. 제대로된 건축물 한 개를 짓는데도 수백억원이 드는 마당에 이 정도의 돈으로 35개를 짓는다고 하니 자칫 내실 보다는 구색갖추기에 머물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건축물들이 대부분 한옥 형식으로 건립되는 것에 비춰보면 이 사업은 그 역사성에서 전주 한옥마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지만 과연 관광객을 얼마나 끌어들일 지는 벌써부터 고민거리다. 청주시는 세종의 편전, 침전 등과 어울리는 체험관을 짓고 인근의 옥화구곡과 구석기인들의 주거지인 청석굴을 연계 개발해 관련 콘텐츠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지에 가보면 이곳 주민들조차 초정행궁의 조성과 그 취지에 대해 여전히 ‘남의 일’ 이다.

초정 행궁이 그저 그러한 또 하나의 지자체표 미투(me-too) 시설이 되지 않으려면 청주시가 이 곳에서의 관광객 체험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고민하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공사하는 사람 따로, 그저 목욕만 하러 초정을 들락거리는 청주시민 따로, 먹고살기 바빠서 관심없다는 초정주민 따로의 민심이라면 설령 세종이 575년만에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여봐라!하고 전국의 백성들을 불러들이기엔 힘이 부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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