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거둥 후 급부상한 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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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거둥 후 급부상한 물 맛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8.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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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 난 약수, 세종대왕 행차 후 지금까지 방문객 지속

초정약수는 예부터 물맛 좋기로 소문났다. 초정에 관한 첫 역사적 기록은 <세종실록 103권>에 나와 있다. 기록에는 세종 28년 “어떤 사람이 와서 아뢰기를 ‘청주에 물맛이 호초 맛과 같은 것이 있어 이름 하기를 초수(椒水)라 하는데……’하니 임금이 장차 거둥하여 안질을 치료하고자 하여 내섬시윤 김흔지를 보내어 행궁을 세우게 하고 이 물을 얻어 가지고 와서 아뢴 자에게 목면 10필을 하사하였다”고 명시했다.

작은 마을이었던 초정은 행궁을 짓고 왕이 행차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초정의 과거에 대한 조사도 병행됐다. 1454년 완성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정의 역사에 대해 ‘고려시대 이 지역을 초자은소라고 불렸다’고 언급했다. ‘은소’는 은을 비롯한 다양한 광물을 채굴하는 곳이다.

이후 초정과 관련해선 1448년 실화로 행궁이 없어지고 1464년 세조임금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약수의 치료효과 등이 알려지자 매년 음력 7월 백중날에는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기 시작했고 연례행사처럼 행해져, 1960년대까지 지속됐다고 전해진다.

물의 효능에 대한 기록들도 도처에 남아있다. 효능을 처음 명시한 서적은 성종 12년인 1481년에 만든 <동국여지승람>이다. 책에서 ‘초수(椒水)는 청주 고을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는 과거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근대 이후에는 ‘세계 3대 광천수’라는 별칭도 붙었다. 초정약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박구원 청주대 관광호텔경영학부 교수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부터 세계 3대 광천수로 불렸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당시 전문기관에 의해 10회 이상의 정밀한 시험분석이 따랐다. 이후 국제적 규모의 박람회 등을 거쳐 세계적인 광천을 능가하는 매우 희귀한 광천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기록에는 이를 인정한 단체가 ‘세계광천협회’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박 교수는 “관련 자료를 아직 찾지 못했지만 여러 증언에서 초정약수가 미국의 ‘샤스터’, 독일의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와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다른 곳들에 비해 당초 초정은 세계적인 유명세나 관광자원으로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과 이름을 나란히 한 것은 품질 좋은 광천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초정약수에서 몸을 씻는 세종대왕의 모습을 재연한 초정약수축제. / 육성준 기자

초정약수 연구에 함께 참여한 주민 최태영 씨도 “초정약수가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라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일제치하 당시에 일본 사람들이 외국에 우리나라 초정약수를 가지고 가서 세계적으로 검증을 받은 것이다”고 기억했다.

국내·외 기록에 따르면 1922년 초정광천수를 이용해 만든 크리스탈 음료제품이 국제규모의 박람회에 출품돼 수상했고 이후에도 몇 번의 수상경력이 있다. 1980년에는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를 인준 받은 국내 최초의 광천수가 됐다. 인준 당시 미국 FDA는 “초정약수는 리터당 30개 이상의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는 독특한 성분을 갖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어 미국 FDA는 “초정약수의 품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네랄워터인 미국의 ‘샤스터’와 영국의 ‘나포리나스’를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근대에는 음료산업 메카
초정약수가 세계 3대 광천수로 인정받을 무렵, 초정은 약수, 광천수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미네랄워터로 음료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문헌에 따르면 한일합방 이후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초정지역에는 음료공장이 들어섰고 광천수를 이용한 음료산업이 발전했다. 이 시기에 초정의 제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판매됐다.

당시 초정약수는 병을 치료하는 치료수의 개념에서 음료산업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07년 초정광천수가 일본인 소유로 넘어갔고 제조공장을 설립해 1921년부터 운영했다. 이후 초정약수는 미네랄워터, 음료 등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오고 (주)일화생수, 충북약수(주)를 거쳐 1990년 일화의 흡수통합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유주가 바뀌며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아직 이를 연구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초정약수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4년여를 연구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며 “현재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 초정광천수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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