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노래를 들으며
상태바
풀의 노래를 들으며
  • 김태종 시민기자
  • 승인 2004.1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에 한 생각, 041217.
지난 해 터키에 갔다 오면서 돌 하나를 주워왔습니다.
뭐 그리 잘 생긴 돌은 아니지만
언제나 돌을 줍거나 풀이나 나무를 데리고 올 때 하듯이
데리고 가면서 '가서 나랑 같이 살자' 하면서 주워가지고 왔습니다.

돌아와 풍란을 붙인다고 얹어놓고 날마다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새 뿌리가 돋아나와 돌에 닿기만 하면
뿌리가 상하기만 하고 통 붙지를 않았습니다.
대신 이끼가 조금씩 살아나 그것을 보려고
풍란을 떼어놓고 계속 물을 주었습니다.

올 봄,
돌틈에 붙어온 씨앗이 움을 틔워 풀 한 오라기가 돋아났습니다.
고향 떠나온 풀이 안쓰럽기도 하고
거기서 돋은 생명이 신기하기도 하여 날마다 물을 주면서 지켜보았는데,
어느 날 그 잎사귀에서 고운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틀림없는 허브입니다.
여름이 건기(乾期)인 터키에서는 거의 모든 풀이 허브라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얘가 여기서도 이리 냄새를 풍기는데,
벌 한 마리 날아오지 않으니 얼마나 절망할까
또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죄를 지으면서 살아간다는 자각,
그래서 허브의 냄새를 즐기지 못하고
마음만 무겁게 가라앉는데,
오늘은 '네 삶의 몫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풀은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언제면 그 말을 들을지 모르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 잎이 조금씩 누런 빛깔로 변하고
나는 그저 물만 줍니다.
이끼는 여전히 푸르게 돋아 돌 전체를 덮어가는데

아, 문득 떠오르는 것 하나
아버님 돌아가시고 스무 해가 지나고 나서야 아버님의 목소리를 비로소
또렷이 알아들은 내 아둔함입니다.
지금은 그 허브 내음을 풍기는 풀이 누렇게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데
아릿한 아픔으로 그 풀에 대고 '안녕'이라고 말해보는 아침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들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