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충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간사)
고백한다. 나는 그리 거창한 목표 혹은 신념, 그리고 철학을 갖진 못했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그저 언론에 대한 관심과 작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민언련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지역신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에도 지역 자체방송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지역언론이 그 일들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도 사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는 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는’ 생각은 스스로 나의 권리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역언론이 지역사회내의 정보교류와 여론 수렴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지역사회내의 현안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다할 때 지역사회의 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지역신문을 모니터 하면서 과연 지역신문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역주민들로부터 괴리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지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현재 폐간 위기를 겪고 있는 충청일보의 경우도 지난 1년 동안의 신문 지면을 통해 ‘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경영과 분리된 편집권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신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로 지역신문은 지역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일부계층에게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민들도 지역신문에 관심 없어 하지만 지역신문도 지역주민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역신문이 보여주는 보도경향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우진교통 파업, 원흥이 생태보전 운동, 공무원노조 파업,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 등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언론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했다. 특히 파업 관련 보도의 경우는 언론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객관성’, ‘공정성’ 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언론은 그저 물어뜯기 좋은 하나의 ‘건수’를 만난 듯한 태도로 이들 사안을 보도했다.
민언련은 지역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은 ‘처음’으로 지역언론에 대한 모니터를 하면서 지역언론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지역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구호로서 머무는 ‘언론개혁’ 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확신을 말해야 할 것이다.
‘언론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라는 구호는 실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길어올린 희망이다.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