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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한 소설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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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한 소설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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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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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김 미 향 출판평론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움베르토 에코가 쓴 『하버드에서 한 문학 강의』(구판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 열린책들)를 재미있게 읽었다. 에코는 독자의 읽기를 게임에 비유하고 올바른 게임의 법칙을 찾아내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독자를 구해 내려 한다. 그를 위해 에코는 여러 책들에 대한 해석을 선보이는데 그중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 소설이 취하고 있는 액자식 구성을 놓고 언급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형적 작가와 경험적 작가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포의 이 소설을 끌어온 것이다.

“내 이름은 아서 고든 핌이다”는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1장의 첫 문장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책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역시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한다. 포는 서문과 후기를 통해 이 모험담이 아서 고든 핌의 실제 이야기라고 진술한다. 그러면서 왜 자신이 독자들에게 이 글을 소개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에코에 따르면 이러한 포에 진술에 의해 아서 고든 핌은 소설의 화자이자 경험적 작가로 부상한다. 어떤 독자에게 아서 고든 핌은 포가 말한 대로 실존인물일 것이고 또 다른 독자에게 이는 모두 포의 소설적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핌 역시 포가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는 이렇듯 소설적 형식부터 흥미진진하다.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혼란에 빠진 독자들을 포는 더욱더 혼란스러운 이야기 한가운데로 끌고 간다. 그러다가 결말에 다다르면 뚝, 그만 이야기가 끊겨 버리고 포의 후기가 등장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한에서 후기의 몇몇 문장들을 옮겨보겠다.

“마지막 두 세 챕터의 상실은 (잃은 것은 다 해서 두 세 챕터였다) 그것들이 남극에 관련된 사실을 담고 있거나 적어도 남극에 무척 가까운 지역에 관한 사실을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또한 지금 정부에서 남태평양에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탐험대가 그 지역들에 관한 저자의 진술들의 진위를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권진아 옮김 시공사 펴냄

꿀럭꿀럭 쏟아지는 공포와 카타르시스
이러한 결말 때문에 19세기 당시 이 소설은 미완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출간 될 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모험소설의 전형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출간 당시의 평가와는 달리 이 소설은 이러한 열린 결말로 인해 쥘 베른이 사라진 결말에 대한 상상을 덧붙여 속편 『빙원의 스핑크스』를 출간하는 등 후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일찍이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를 프랑스에 소개한 샤를 보들레르는 포에 대해 “운무를 꿰뚫는 그의 눈과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의 귀를 우리의 게으른 눈, 먹어버린 귀와 비교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의 호랑이에게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리처드 파커’의 이름을 따 붙이기도 했다. 형식 면에서도, 스토리 면에서도, 감각의 차원에서도(책장을 넘기는데 피비린내와 바다 냄새가 훅 끼친다!) 신선하고도 놀라운 이 소설이 1838년에 쓰였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

낸터킷 출신의 청년 아서 고든 핌이 친구 어거스터스와 함께 포경선 그램퍼스 호에 숨고 이후 화물로 가득한 폐쇄 선실에서 겪는 정신 착란, 시퍼런 바다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선상 반란과 살육, 난파와 유령선 출몰을 겪으며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선택하게 된 식인食人 행위와 원주민과 미지의 땅 발견, ‘흰색’으로 대표되는 공포와 인종차별 문제까지 올여름 모험과 탐험을 거쳐 사회적 울림까지 주는 이 작품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위를 쫓는 데 있어 에어컨보다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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