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들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들,나는 그들 곁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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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들,나는 그들 곁을 떠날 수 없다”
  • 충청리뷰
  • 승인 200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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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인씨(43)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학 2년생인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날, 한번은 선생님과 사회복지시설에 봉사할동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울먹이는게 아닌가. “엄마 거기 애들이 나보고 아빠라고 그래, 너무 불쌍하잖아...”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단순히 아들 봉사활동에 차량지원만으로 생색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날 아들의 눈망울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봉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좀 색다른 경우지만 사실 그녀는 학생 때부터 동네의 어린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씻기고 가꿔주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현재 맡고 있는 일은 청주시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센터 소장이다. 조소장이 이끄는 봉사센터는 충북공동모금회와도 협정을 협정을 맺고 기금모금의 전위대(?)를 자처하고 있다.
처음엔 학교 자모회나 마을별 봉사단체에 속해 활동했으나 2000년 11월 청주사회복지협의회 출범을 계기로 전방위 봉사활동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현재 20여개 팀별로 300여명의 회원이 펼치는 활동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초정노인병원을 찾아 노인들에게 목욕 이발을 시켜주고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과 매주 화요일마다 장애아들을 데리고 소풍행사를 갖는 것에 특히 애착이 간다. “하면 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게 봉사인 것 같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애들을 보면서 참 숱한 생각을 하게 돼요. 가끔은 함께 울어 버립니다.”

봉사도 알아야 한다

초정노인병원엔 조소장의 시어머니도 4년째 장기 요양중이다. 때문에 이곳에 대한 봉사활동은 그녀에게 더욱 각별하다. “처음엔 시어머니 한분의 간병조차 너무 힘들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지금은 노인분들의 표정만 봐도 행복을 느껴요. 치매어른이나 지체장애인들의 보살핌은 더 말할 수가 없었는데, 적응할 때까지는 며칠간 밥도 못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조소장의 봉사예찬은 감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아주 논리적이다. 스스로의 경험 때문이다. 단순히 의욕만을 가지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도중에 중단하는 사례를 비일비재하게 목격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봉사를 몸으로 때우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큰 오해입니다. 봉사도 배워야 가능합니다. 사전지식이 충분해야 자기한테 주어지는 주변 상황을 통제,관리할 수 있듯이 봉사도 마찬가지예요.” 마침 자신이 일하는 사회복지협의회가 1년에 두 차례씩 시민복지대학을 운영, 관련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 한번에 대략 80여명 정도가 수료하는 데 이중 20~30명 정도는 강좌가 끝난 후 별도 봉사팀을 만들어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연락 267-0866)

한달 서너시간이면 큰 도움 줘

조소장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사업가를 대하듯 언행이 시원시원하다. 실제로 그녀는 사업가다. 청주지역의 시내버스 자동안내 방송에서 선두를 달리는 ‘가라뫼 시스템’(청주시 흥덕구 봉명 2동 2026)의 대표를 맡고 있다. 시내버스 안내방송하면 과거엔 운전수가 수동으로 기껏 정거장 정도를 알려주는 수준이었지만 조소장이 납품하는 아이템은 컴퓨터를 이용한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광고방송까지 가능하다. 부군 역시 같은 업종으로 현재 대구 수원 전주 포항에까지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경제적 안정이 조소장의 봉사활동에 든든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봉사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더도 말고 한달에 서너시간만 할애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죠. 이 정도면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 꼭 필요한 관심을 줄 수가 있어요.” 10여년간 불우이웃과 함께 해온 그녀지만 모든 일에 아주 긍정적인 자세가 특히 인상적이다.

봉사로 가정교육도 만점 이뤄
“활동 적극 알려 동조자 늘어났으면..”

조소장은 언론에 자기 이름이 나가는 것을 몹씨 꺼렸다. 그러나 얼마전부턴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저와 동료들이 하는 일을 전해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동참을 제의해 온다면 그 보다 더 큰 보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변엔 그런 자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그 분들한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어요.” 인터뷰 도중 그녀가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자식 자랑이다. 자신의 봉사활동 덕택에 두 아들(대학 2, 중 3) 만큼은 확실하게 키웠다는 것이다. “집으로 찾아 온 장애아들과 같이 놀아 주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심성을 저절로 익혔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커 오면서 한번도 속 썩이거나 말 대꾸한 적이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가정교육이 또 어디 있어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조소장은 사업에서의 성취감도 대단한 매력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봉사한 이후의 만족감은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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