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로 ‘橋梁’을 찾아서’7-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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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로 ‘橋梁’을 찾아서’7-진천 농다리
  • 충청리뷰
  • 승인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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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형상
최고·최장의 돌다리, 유례없는 매우 진귀한 돌다리

사람이 살기에 덧없이 좋다는 생거진천.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 마을앞 세금천(洗錦川)에 지네처럼 누워있는 농다리(籠橋)는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매우 진귀한 돌다리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가장 긴 다리다. 그러나 무엇보다 30∼40cm의 사력암질을 이용하여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올린 교각이 오랜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게 버텨내도록 한 토목공학적 우수성 때문이다.
농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농다리는 언뜻 보아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으므로,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두께가 각각 1m가 넘는 교각들은 양끝을 유선형으로 오므려 물살의 저항을 덜 받게 하였으며 너비가 3m 쯤 된다. 그 위 한가운데에 길이 1.7m 안팎, 두께 0.2m쯤 되는 돌판을 한 개 또는 두 개씩 걸쳐서 상판으로 삼았다. 여기에 사용된 돌은 이곳에서 나는 자석(紫石)을 이용했기 때문에 자주빛 빛깔이 강물과 어우러져 진한 맛을 준다.
처음에는 교각의 수가 28개였다는데, 지금은 양쪽으로 두 개씩이 줄어서 24개만 남아 있다. 다리 전체의 길이는 현재 93.6m에 이른다.

고려시대 축조설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이 다리는 고려 고종때의 권신인 임연(林衍) 장군이 그의 전성기에 출생지인 구곡리 굴티앞 세금천에 축조한 것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설(異說)이 대두되어 힘을 얻고 있다. 즉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이라는 설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진천 태수로서 이곳 변방을 지킬 때 진천의 도당산성과 청원의 낭비성을 잇는 군사요로로 축조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신라·고려시대에 쌓아올린 교각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내고 있다.
농다리는 여느 옛 다리와 같이 축조 신화와 함께 그 마을의 수호신으로서의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농다리를 건너가다가 농다리 밑 소슴천에서 물을 먹어보고 안질, 풍, 피부병을 고쳤다는 전설과 같은 것이 그 예다. 후에 임금이 먹은 물이라하여 어수천 약수라 칭하기도 했다한다. 이후 구곡마을 사람들은 안질, 풍, 피부병 앓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농다리를 건너 살고개라는 곳의 바위에는 장수들과 말 발자국이 있는데 이는 장수들이 농다리를 놓기 위해 말로 돌을 운반하던 흔적이라는 유래가 전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농다리와 관련된 전설같은 믿음은 최근까지도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울음으로 국가 변란 예고 ‘전설’

그 중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농다리가 운다는 내용이다. 박정희 대통령 유고시에도 농다리 3칸의 돌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큰 장마에도 끄떡없는 농다리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소실되곤 한다고 믿는 것도 그것이다. 그예로 6.25동란이 나던해 여름 장마에 5칸의 농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농다리 입구 마을 앞에는 돌을 쌓아 고속도로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는데 어느 풍수지리가가 돌로 마을을 막아야 마을을 지킬 수 있다고 해서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농다리에 얽힌 전설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이는 농다리가 이 지역 주민들의 의식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경외시되었는가를 말해준다.
현재 마을 앞에 큰 돌 두 개가 땅에 박혀 있는 것과 관련된 전설도 재미있다. 임연장군 남매가 하루 아침에 다리를 놓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던 중 아들 임연이 먼저 다리를 완공했는데 여러곳을 돌아 다니며 바위를 구해 겨드랑이에 끼고 오다 이 소식을 들은 누이동생이 화가 나서 던져버린 바위라는 전설이다.

마을 한데 묶는 대동제 역할

농다리는 이제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통해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증평인터체인지를 지나 진천 못미친 곳에 대형 표지판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진천 저수지의 축조와 중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유속 및 물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와 장마철마다 일부 상판이 유실되는 일이 잦아져 진천군을 애태우고 있다.
농다리는 조용한 산골 풍치가 어우러진 곳에 유유히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의 낭만스러움으로 인해 연인들의 발길을 붙드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SBS 방송의 ‘모래시계’는 강원도 정동진역에는 못미치지만 농다리를 가볼만한 유명 장소로 만들어 주었다. ‘모래시계’의 남녀 주인공(최민수, 고현정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 농다리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방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진천군은 농다리를 이용한 관광 홍보에 나서는 한편 주변 정비사업도 펼치는 등 옛 다리 농교에 대한 높아지는 관심을 붙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기관의 이러한 노력과 투자보다 더욱 가치를 높이는 것은 역시 농다리와 함께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 속 축제다. 이 마을은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봄마다 농다리 밟기 대동제를 열어 무너진 다리를 보수하면서 마을의 안녕과 농다리의 무탈을 비는 마을 축제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농다리는 이렇듯 오랜 세월 마을의 중심적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마을 전봉석씨(88)는 “옛날에는 장돌뱅이들이 진천장을 본 후에 구곡마을을 건너 양지촌에 있는 봉노방(장돌뱅이들이 하룻밤 묵던 집)에서 자고 농다리를 건너 증평장을 오가곤 했다”고 전했다.
냇물 건너 밭을 가는 농부들이 여전히 쟁기를 지고 소를 몰아 건너다니는 생활의 다리이며 주민들의 마음속에 수호신 쯤으로 자리잡은 전설의 다리이기도 한 농다리.
이 조그마한 냇가를 건너기 위해 이만한 돌다리를 놓은 우리 조상들의 정성과 노력이 실로 엄청남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송광섭 청주건설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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