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크라쿠프 바벨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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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크라쿠프 바벨 성당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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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의 역사의 오솔길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국인 폴란드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네 처지와 비슷하다. 타타르 족과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기 일쑤였으며 그 피침의 그림자는 2차 대전까지 폴란드를 어둡게 물들였다.

강대국인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끼어있는 까닭에 툭하면 쯔아(러시아 황제)의 군대가 휩쓸었고 독일의 군화가 짓밟고 지나갔다. 1722년부터 폴란드는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에 의해 3차례나 분할통치를 받는 불운을 겪었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독일에 있던 게 아니라 폴란드에 있다. 원래의 지명은 오슈비엥침으로 교황이 대주교로 있던 크라크푸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이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토룬 시의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한다...” 오죽하면 김광균은 ‘추일서정’에서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비유했을까. 동구의 중심국가인 폴란드는 국민소득이 좀 낮지만 정신적 GDP는 높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폴란드 국민의 가슴을 잉잉 울리고 있으며 쿼바디스의 저자 솅케비치의 문학 혼이 살아 숨쉬고, 퀴리부인의 탐구정신이 자긍심으로 남아 있다.

20세기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정신적 지주였다. 비 이탈리아인으로 5백년만에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 폴란드 크라크푸의 대주교였다. 인구 75만 명의 크라쿠프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고도다.

비스와 강변 언덕에 솟아있는 바벨 성은 한 폭의 그림이다. 밤이 되면 오색찬란한 조명이 바벨성을 비추며 그 환상의 그림자가 강물에 빠져든다. 역대 폴란드왕의 대관식과 장례식은 모두 이곳에서 치러졌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왕궁은 폴란드의 긴 역사적 호흡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성당은 바벨성내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다. 바벨 성당의 중심부에는 성 스타니스와프의 은관과 성물함이 은빛 찬란한 가운데 성 야드비가 여왕의 석관, 카지미에쉬 대왕의 석관 등 왕과 성인들의 관으로 가득 차 있다.

바벨성당은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 금박 돔을 얹은 르네상스 양식의 지그문트 예배당이 돋보인다. 바벨성당의 첨탑으로 올라가려면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숨이 차도록 밟아야 한다. 상층부에는 ‘지그문트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 종의 종추를 두 손으로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성벽 위에는 녹슨 중세의 대포가 사방을 겨냥하고 있다. 관광객의 발길은 하루종일 미어지고 성 입구에는 아직도 흑 기사가 성문을 지킨다. 수문장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허리띠에서 행낭을 푸는데 여기에다 약간의 촬영 비를 지불해야 한다.

폴란드는 전형적인 카톨릭 국가다. 마을 입구마다 성모상을 모실 정도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경배심이 유달리 강하다. 중세시대 제정일치의 잔영마저 어른거린다. 생활자체가 종교이고 종교가 곧 생활인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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