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정치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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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정치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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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석(서원대 법학과 교수)
   
지난 몇 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선정이 초읽기에 들어 간 듯하다. 이미 전국적으로 80여명의 전문가들이 항목별 평가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를 종합하여 5월 초순에 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니, 조금만 참으면 고속철도 분기역 때문에 생겨난 크고 작은 소란들도 진정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개발보다는 환경을, 성장보다는 분배를 고민하는 편이다 보니 고속철도 문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명색이 시민운동한다는 사람으로서 오송역유치의 타당성을 주장했다가 혹시라도 지역이기주의자로 몰리지 않을까하는 비겁한 마음에 말을 아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충북도민의 한사람으로서 오송역이 선정된다면 충북과 청주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니 어찌 관심이 없었겠는가?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아무리 객관을 빙자해 생각해 보아도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발전의 토대를 갖춘 천안보다야 그 동안 소외되어온 오송이 분기역이 되는 것이 옳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필요성과 타당성까지 들어가며 고속철도 분기역은 오송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미래 사회에서 고속철도의 중요성 때문이다. 미래의 발전상을 그려 볼 때, 거의 모든 여객과 화물이 고속철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주변에 고속철도 역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도시의 발전과 명운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 고속철도는 단순히 국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고속철도은 일본의 신간선과 해저로 연결될 것이고, 이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간횡단열차와 이어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로 연결망이 형성되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속철도는 편리함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세계 물류의 중심선이 될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고속철도의 중앙에 오송이 자리한다면 지역발전의 화려한 청사진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렇듯 고속철도는 우리나라의 명운을 건 과제임과 동시에 그 무엇보다 중대한 지역현안임이 분명하기에, 고속철도 분기역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의 치열한 경쟁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분기역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경합하고 있는 지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분별없는 행태들에 대해서는 쉽게 동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고속철도의 분기역 선정과정은 당연히 과학적 분석과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통해 국민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주관적 욕심이 충돌하고, 지역적 이기주의로 흘러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와 지역의 화합이란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구태정치의 축소판을 보고 있는 듯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이미 충남의 호남권 끌어안기 전략과 충북의 경북, 강원권 끌어안기 전략으로 인해 새로운 동·서 지역대결 양상이 나타나고 있고, 찬성과 반대인사들 사이에서는 논리보다는 감정대립과 우격다짐이 횡행하면서 인간적 혐오감도 서슴없이 표출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이 소요되는 호남고속철도 건설과 분기역 결정은 여론몰이나 중앙정부에 대한 로비력과 지역간의 세력대결을 통해 결정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본질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오로지 지역감정과 이전투구식 싸움이 계속된다면,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결정의 객관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주에서 이해찬 총리가 밝힌 바와 같이 또 다시 호남고속철도 건설 자체가 중단되거나 상당기간 늦춰질 수도 있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고속철도 분기역 결정이 임박한 이 순간에, 당연히 오송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다고 집안에 들어 앉아 가쁜 숨만 헐떡거리며 밖을 향해 악을 쓴다고 오송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혹 오송으로 온다고 해도 다른 이웃들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처지도 못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닫힌 대문을 활짝 열고 나와 이웃을 너그럽게 대하는 여유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이 땅은 우리가 오늘만 배불리 먹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수 천년 동안 고속철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후손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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