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고 청원군 사장하겠다”오효진 청원군수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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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우고 청원군 사장하겠다”오효진 청원군수 당선자
  • 충청리뷰
  • 승인 200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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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당·군민에 대한 지조로 군수출마 결심

“의기남아(義氣男兒)의 지조를 지키는 심정으로 청원군수 출마를 결심했고, 똑같은 각오로 임기를 마칠 생각이다” 세번째 도전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은 오효진 청원군수 당선자(57)는 2년뒤 ‘총선출마설’에 대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96년·2000년 두차례에 걸친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375표·16표 차로 석패했던 그가 과연 여의도를 포기한 것인가? “다 버렸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돈 욕심도 다 내던지고 하겠다. 청원군이라는 회사의 사장된 심정으로 공명정대하게 회사를 살리는데만 전념하겠다. 진인사(盡人事)해서 임기중에 확실하게 방향이 바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예상을 뒤엎고(?) 군수출마로 방향을 선회한 배경부터 궁금했다. “일차적인 이유는 JP와 자민련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4월말 이원종지사가 자민련을 탈당하고 당에 위기가 닥쳐왔다. 지지기반을 다지고 일으키기 위한 적임자로 당이 나를 지목했고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다 최종 군수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처음엔 거부했지만 당이 어려울 때 나를 희생해서 싸우고 것이 의기남아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고향발전을 위한다고 선거때마다 얘기해온 내가 정작 군수출마를 거부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고향을 위해 헌신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했다”

인물론이 정당바람 잠재워

한나라당의 거센 바람속에서도 청원군 유권자들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오당선자에게 넉넉한 표를 몰아주었다. 하지만 정치입문 7년만에 당선증을 받아든 오당선자가 혹시 2년 뒤 총선에 재도전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구당위원장직을 고수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그동안 나를 믿고 도와준 당원들이 있다. 당조직을 건실하게 이어받을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물러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를 믿고 따라준 분들에 대한 도리이고, 지조를 저버리는 내 모습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도 2년뒤, 4년뒤의 일도 생각하지 않고 청원군수로써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현직 군수가 비리혐의로 수감중인 청원군은 산적한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단체장 공백에 따른 군정의 후유증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한문석 부군수가 대행체제를 잘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동안 말많았던 공사입찰도 수의계약을 없애고 공정한 룰을 갖춰 취임후 내가 할 일을 미리 해 준 셈이다. 인사가 특수한 인간·조직관계에 의해 왜곡됐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 사실관계를 알아보는 중이며 시정할 것은 반드시 고쳐나가겠다. 인사의 기본원칙은 공평무사, 능력위주가 되야하며 그동안 막힌 부분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뚫어주는 해소책을 강구하겠다”

스파텔, 전문업체 위탁경영 최선

난마처럼 얽힌 ‘판도라의 상자’ 스파텔. 오당선자는 어떤 해결방안을 구상하고 있을까. “군직영은 불가능하고 민간개념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관광레저 업종에 풍부한 경험, 네트워크, 자금력을 가진 회사를 유치, 위탁경영을 통한 정상화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 건물 전체적으로 대수선이 필요하고 시설·운영면에서 질적인 수준향상을 통해 거듭나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오당선자가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 있었다. 행정경험이 부족이 그에게 집중된 화살이었다. “남궁석 정통부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출신이지만 누구보다 훌륭하게 일을 해냈다. 행정능력을 앞세우는 관료출신의 후보들은 결국 조직관리에 능할 뿐, 풍부한 상상력, 실천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선단체장은 자치단체라는 회사의 경영자가 되야한다. 그동안 정부 공보실장(장관급)도 경험했고 서울방송에서 수백명의 조직을 움직이는 보도국장·이사도 지냈다. 지휘관을 해본 경험, 바로 그것이 자치단체장의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단체장, 상상력·실천력 있어야

오당선자가 거쳐온 다양한 직업은 그의 타고난 재능과 상상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가로 등단했고 고교 교사로 3년간 재직하기도 했다. 74년 문화방송 기자를 시작으로, 95년 10월 서울방송 편성이사까지 21년간 언론인으로 봉직해 왔다. 여기에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전문작가로 손색없는 경지에 오르게 됐다. 사진에 대한 그의 애착은 여전했다. “그동안 연재해온 글 가운데 월간조선 ‘오효진의 인간탐험’이 50회를 넘었고 월간 <사진과 예술>에 ‘오효진의 사진과 생각’이란 타이틀로 사진과 에세이를 연재해왔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사진과 에세이는 계속 연재하고 싶다. 또한 인터뷰 전문기자의 경험을 살려 ‘체험적 인터뷰론’이란 가제로 단행본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다”
언론계 대선배(?)인 오당선자에게 진천군 공무원들의 기자실 폐쇄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현행 출입기자실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도 궁금했다. “서울방송 재직때 나름대로 기자실 운영안에 대해 생각했고 시도도 했었다. 출입처 위주가 아닌 팀별 위주로 환경·교통등 특정분야을 입체적으로 취재하도록 했다. 우리처럼 출입기자실을 운영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취임후 현상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기자실을 폐쇄하는 충격적인 해결방법은 찬성하지 않는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토론·협의를 거치지 못하면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두번의 고배를 마시고 와신상담, 민선단체장의 직무를 맡게된 오당선자에게 월드컵의 주문을 외고싶다. ‘오효진, 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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