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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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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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장)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지금.힘차게 기지개를 펴는 나무와 생명의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개울물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금껏 지나온 길과 내가 서있을 이곳을 다시 보게 된다.

세월이 급격하게 변해가면서 ‘양보(讓步)’와 ‘인내(忍耐)’는 덕(德)이 아닌 우매함이요, ‘효(孝)’와 ‘애(愛)’는 마음이 아닌 ‘형식’과 ‘거러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노파심이 들곤 한다. 물론, 일부의 그릇된 행태만을 보고 우리사회 전체를 비관해 버리는 모순(矛盾)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촌부(村夫)의 기우(杞憂)일 것이라 믿지만 말이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 속에 조금씩 희미해지는 ‘인(仁)’과 ‘예(禮)’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 최근 사회적 이슈(issue)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보도를 보면 더욱더 우리네 전통사상의 소중함이 더해지니 말이다.

이제부터 소개 할 몇몇 사례에서 나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함이 아니라 전통윤리의 관점에서 양자(兩者)간 서로 한발 뒤에 물러서 과연 내가 가려하는 길(道)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권력화된 강성노조와 가치창조를 망각한 사측의 대립, 님비(NIMBY)와 핌비(PIMBY)로 가득찬 집단이기주의를 보며 우리 전통의 미덕인 ‘양보’와 ‘인내’를 그려본다.

고도의 정보화·산업화 시대의 변형된 자본주의는 과거 자본이 주가 되고, 노동이 부가 되어 종속되는 시대가 아니다. 정보와 전략, 조화와 집중, 자본과 인재가 이 시대를 이끌어 나아가는 원동력이자 힘의 원천이다. 이제 자본과 노동은 더 이상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인 것이다.

현실을 보라. 진정 보호 받아야 할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신성한 노동을 위한 투쟁인가, 배부른 권력집단의 이익을 위한 투쟁인가를.
생각해 보라. 고객을 위한 가치를 창조하고 소중한 인재를 육성하며 지원하는 기업의 사명과 윤리를 망각하고 이익의 극대화라는 숫자의 함정 속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를…

세계시장속의 무한경쟁 시대에 노(勞)와 사(社)가 대립한들 그 이익은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겠는가? 서로 ‘양보’하고 조금은 ‘인내’ 할 수 있다면 기업(자본과 노동)과 민족(국가)의 경쟁력과 이미지는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이제는 서로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혜택’과 ‘보상’만을 원하고 ‘희생’과 ‘봉사’를 회피한다면 대규모 프로젝트인 사회기반시설 확충에서부터 신행정수도이전까지의 모든 계획은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수혜를 봐야 할 우리의 후손들에게 과연 떳떳할 수는 있을런지.

얼마전 신생아를 함부로 다룬 사건과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종아리를 때렸다는 보도를 보고 안타까움에 깊은 한숨을 쉰 적이 있다. ‘효’와 ‘애’를 근간으로 삼아온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부끄러운 모습으로 변해 갔을까·자신의 허벅지의 살을 베어 부모를 공양하던 시대는 아니지만 ‘홍익인간’의 뿌리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배워온 우리가 막 피어나는 생명의 소중함과 황혼으로 지어가는 생명의 고귀함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이미 예전부터 新고려장이 사회문제로 대두 되면서 국가차원의 실버산업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효’와 ‘애’의 마음이 없다면 이 또한 화려하게 포장한 고려장의 다른 모습은 아닐런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겪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활도 가치관도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우리다. 그러나 사람을 대함에 있어 ‘양보’와 ‘인내’로 ‘효’와 ‘애’로 감싸 안을 수 있다면 좀더 따뜻한 가슴으로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한다. 전통사상이 아닌 사람의 도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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