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소외 현실, 실력으로 극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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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소외 현실, 실력으로 극복할 것”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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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극복 초석 다진 경제통 … 자타 공인 ‘준비된 재목’
이 용 희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위원

정부관료 중에서도 경제부처의 인물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업무의 성격상 다른 부처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덜한 반면, 대신 전문식견을 요하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일반인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용희 씨(55·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위원)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미 국가적 경제현안 때마다 각종 요직을 맡으며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가 한 일에 비해 정작 고향인 충북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으로, 최근엔 경제부처 차관감으로 입줄에 오를 정도로 공직의 정점을 눈 앞에 둔 상태다. 그를 잘 아는 주변인들은 진작 큰 일을 했어야 할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내심 한가지를 걱정한다. 정치적 변수다. 조건을 다 갖췄더라도 결정적일 때 밀어주고 끌어주는 ‘힘’의 부재를 우려하는 것이다. 중앙무대에서 철저히 밀리는, 현재 충북이 처한 현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 0% 진기록 남겨
충주시 용산동 출신인 이용희 위원은 우리나라가 IMF의 덫에 걸려 신음할 때 오히려 자신의 진가를 맘껏 발휘했다.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1998. 4~2000. 6)으로 있던 시절이다. 당시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며 그야말로 국가 경제기반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물가마저 폭등하자 서민경제 역시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소비자 물가가 10% 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갈 당시 이위원에게 떨어진 특명은 당연히 물가안정. 이 때 제도적 측면의 물가시책과 철저한 현장 확인 조치를 병행한 결과 1999~2000년 사이 물가상승률 0%대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긴다. 이런 공적에 힘입어 이 위원은 2000년 2월 29일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 위원은 그 당시 자신이 강력 밀어 붙였던 부동산 정책을 기억하며 지금의 재건축억제책에 대해 한마디 쓴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그 때도 재건축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키는 원흉이었다. 철저한 원칙을 들이대며 무분별한 재건축을 억제해 부동산 안정을 꾀하게 됐는데, 내가 OECD 대표부 공사로 파리에 부임한 이후론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국가에서 먼저 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하나둘씩 풀어준 것이다. 경기침체를 부동산 활성화로 풀어보겠다는 단기적 발상에 기인한 것으로, 결국 그 때의 오판이 지금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잖은가. 뒤늦게 정부가 재건축 억제책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스럽다.”

이처럼 서민경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이위원은 대통령실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청와대에 근무할 때엔 국민기초생활법 제정의 일등공신으로도 역할했다.

국가위기 상황마다 실무자로 기여
충주중학교와 경복고를 나와 서울대 재학중인 1974년 행정고시(14회)에 합격, 1974년 노동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경제기획원 통계청 재정경제부 등 줄곧 경제부처에서 공직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외환위기 등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중차대한 상황을 몸소 체험한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때의 업무수행이 그의 능력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관련 부처의 실무 책임자로 외환위기 극복에 일조한 그는 KEDO(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 재정국장으로 미국 뉴욕에 근무할 때(1995~1998)도 힘들지만 보람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엔 북한 영변의 핵문제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 일보직전까지 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는데, 이런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 즉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는 대신 영변핵문제를 해결하기까지 KEDO의 실무책임자로서 완벽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위원은 당시 분위기에 대해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이용희 위원 본인이 경제통인만큼 역시 경제관료를 지낸 충북출신 홍재형 의원(전 경제부총리·열린우리당)과 윤진식 전 산자부장관과도 가까운 인연을 갖고 있다. 홍의원이 경제기획원 대외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위원은 과장으로 일했고, 홍 의원의 경제부총리시절엔 국장으로 승진하며 국회에 파견돼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정책연구실장을 맡았다. 윤진식 전장관과는 프랑스 파리에 주재하는 OECD 대표부 공사를 서로 주고 받았는데, 1대 공사 현정택 씨(전 여성부차관)에 이어 2대 윤진식, 3대 이용희를 거쳐 현재는 4대 공사까지 이어졌다. 3년간 OECD 공사로 일하며 리더의 필수인 국제적 감각의 내공을 충분히 쌓은 이위원은 KDI(한국개발연구원) 초빙연구원을 거쳐 올 1월부터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위원을 맡고 있다. 지방분권 차원에서 본사를 부산에 두었기 때문에 이 위원은 1주일에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두세번 왕복하는 고된 공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오히려 장거리를 오가며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

결정적일 때 힘있는 충북위상 절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지난 2004년 1월 29일 관련법 제정으로 기존의 한국증권거래소와 한국증권협회 한국선물거래소 등을 통합한 것이다. 유가증권의 매매 및 선물거래에 대한 업무를 통합, 자본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을 절감하고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운영의 공익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감사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해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는 중앙부처에서 충북의 목소리가 자꾸 왜소해지는 것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충북은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나 역시 역대 정권에서 충북 출신들이 요직에 발탁되며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앙무대에서 충북의 위상이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데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공직의 신분에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어쨌든 우리 충북의 분발이 절실한 시점이다. 적어도 국가적 정책이나 인물발탁에 있어 영호남 지역구도 때문에 충북이 더 이상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런 위상이 아쉽다.”

이용희 위원 약력
1974. 2: 서울대 천문기상학과 졸업
1976. 2: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73. 11: 제 14회 행정고시 합격
1974. 11: 노동부 사무관 임용
1976. 3~1984. 5: 경제기획원 예산국, 경제협력국, 경제기획국
1984. 6~1985. 5: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
1985. 6~1988. 5: UN 공업개발기구 근무
1994. 10~1995. 10: 국회 경쟁력강화 특위 정책연구실장
1995. 11~1998. 2: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재정국장
1998. 4~2000. 6: 재경부 국민생활국장
2000. 6~2001. 5: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
2001. 5~2004. 5: OECD 대표부 공사(프랑스 파리)
2004. 6~2005. 1: KDI(한국개발연구원) 초빙연구원
2005. 1~ :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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