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스토커’인가 무고한 ‘무고사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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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스토커’인가 무고한 ‘무고사범’인가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5.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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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죄로 2번 기소당한 전직 경찰관 법적분쟁 3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50대 시민이 단속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다 무고혐의로 구속수감된 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법적 공방전을 3년째 계속하고 있다. 단순 음주운전이면 소액 벌금형으로 끝났을 사건이 담당 경찰관, 검사, 판사를 고소하면서 정작 자신은 무고죄로 옥살이를 한 것이다. 또한 수감된 상태에서 재고소를 하는 바람에 재차 무고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더구나 이같은 무모한 법적투쟁의 주인공인 이경섭씨(50)가 전직 경찰관이라는 점은 세간의 입줄에 오를만한 엽기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씨는 6개월간의 수감생활과 끊임없는 소송준비로 지난 3년을 버텨왔다. 청주 수곡동 법원 검찰청 직원들은 이씨를 집요한 ‘고소 스토커’로 여기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단속 경찰관의 주장과 다른 새로운 감정결과를 통보받았다.

이씨는 진행중인 무고재판에 유리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한차례 무고판결을 내린 법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한 전직 경찰관이 던진 계란이 어떻게 바위에 부딪쳐 3년을 버텨왔는지 알아본다.

=국과수도 복원못한 음성녹음 ‘의혹’
지난 78년 경찰에 투신해 16년동안 봉직해온 이경섭씨는 친구의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나면서 인생유전의 길을 걷게 된다. 월급차압의 위기에 몰린 이씨는 94년 사직서를 내고 이듬해 행정사 자격을 취득한다. 청주시 내덕동에 행정사 사무실을 내기도 했지만 세를 내기도 벅찰만큼 운영난을 겪고 일반 영업전선에 나서게 됐다. 지난 2001년 12월말 정수기 판매회사에서 영업을 하던 이씨는 청주시 모충동 운호고교앞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됐다.

혈중 알콜농도 0.145%로 운전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이씨는 혈액 채취 음주측정을 요구했다는 것. 하지만 당시 모충파출소 소속 B경찰관은 ‘피 뽑으면 더 나온다’며 이씨의 요구를 묵살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씨는 담당 경찰관들의 ‘위법한 음주측정’ 등을 이유로 법원에 ‘자동차운전면허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당했다.

또한 이씨의 도로교통법 위반사건(음주운전)에 대한 재판도 진행돼 담당 경찰관의 혈액채취 측정거부 여부가 핵심사안으로 떠올랐다. 담당판사는 모충파출소의 CCTV 비디오테이프를 제출받아 음주단속 직후 파출소에서 벌어진 장면을 검증했다. 화면상으로 모충파출소의 A경찰관이 소파에 앉아있는 이씨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네자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탁자옆으로 밀쳐놓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대해 경찰측은 A4용지 크기의 ‘혈액채취 동의서’를 이씨에게 건넸지만 본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혈액채취를 하지 못했다고 법정진술했다. 하지만 이씨는 당시 경찰이 건넨 것이 ‘주취운전자 적발내용’ 서류이며 혈액채취 동의서를 보여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시된 비디오가 녹음상태가 불량해 대화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재판부는 경찰의 진술을 받아들여 이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판사가 처음에 벌금 100만원이라고 했다가 ‘반성하느냐’고 묻길래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다’고 하더라. 세상에 이런 식의 판결이 어디 있는갚고 말했다. 판결에 불복한 이씨는 2002년 7월 혈액채취 동의서를 제시했다는 A경찰관과 담당 판사를 상대로 위증, 직무유기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병원 입원상태에서 구속집행해
하지만 검찰은 문제의 파출소 녹화 테이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화면의 삭제나 편집 조작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고 이씨를 무고혐의로 구속했다. 당시 녹화테이프 원본은 오작동으로 빠르게 녹화되는 바람에 A경찰관이 사설 사진촬영소에서 재생한 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했고 진위여부를 국과수에서 가리게 된 것.

하지만 국과수가 음성복원한 테이프도 대부분 대화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또한 테이프 위변조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교한 편집일 경우 테이프 현상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증거물인 테이프 자체를 파괴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씨는 2003년 3월 오른손 골절로 내덕동 J정형외과에서 6주 진단을 받고 입원중인 상태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됐다. 청주지검은 이씨가 구속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병원입원한 것으로 판단해 무리하게 영장을 집행한 것이었다. 이씨는 몸에 깁스를 한 상태로 수감돼 곧바로 청주교도소 병사 사방으로 배정됐다. 결국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돼 7개월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교도소 수감당시 검찰 조사계장을 직무유기 등으로 고소한 사건 때문에 다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됐다. 청주지검은 2003년 10월 이씨가 석방된 지 1개월만에 다시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같은 사건으로 2차례나 무고죄로 재기소 당하는 기이한 사건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청주지법에서 18개월째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검찰은 이씨가 고소남발을 통해 정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법기관 공무원들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전직 경찰관의 신분으로 음주단속에 불응하고 법률기관에 대항하는 모습을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대해 이씨는 “내가 전직이라는 점을 내세워 단속경찰에게 봐달라고 사정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경찰관이 혈액채취 측정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은 직무집행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검찰은 내게 ‘괘씸죄’를 걸어서 두 번씩이나 무고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을 통해 진실은 가려질 것이다. 고소인인 내가 어디 도망갈 것도 아닌데,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를 끌어다 구속할 수 있는가?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았고, 억울한 무고죄에 대해서는 결백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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