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한겨레신문>
상태바
레미콘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한겨레신문>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6.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합리한 도급계약 죽음까지 내몰았다”

레미콘 운반차 기사들은 ‘사업자’ 신분이다. 하지만 레미콘 회사와 사용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실상의 ‘노동자’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과 함께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인 셈이다. 한국노총 충주지역지부 의장 김태환(39)씨의 죽음을 계기로 레미콘차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원금 삭감·폐지=대흥레미콘, 사조레미콘, 하림레미콘 등 충북 충주지역 3개 레미콘업체의 운전기사들은 1998년까지만 해도 회사 소유 차량을 운전하고 실적에 따라 돈을 받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회사들이 레미콘차를 운전 기사들에게 팔면서 사업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회사 쪽은 차량 매각 당시 비수기 지원금, 장거리 추가운임 지급 등을 약속했지만, 해마다 경기 악화를 핑계로 하나둘씩 지원금을 없앴다.

레미콘차 기사들은 처음에는 1회전 운행(레미콘 물량을 한 차례 수송하는 것)에 차량 연료 20ℓ에 해당하는 돈을 운송비로 받았다. 1회전 운행하는 데 평균 17ℓ 가량의 연료가 소요되는 탓에, 3ℓ어치의 운송비는 식사비조로 기사들의 손에 떨어졌다. 하지만 2003년부터 회사 쪽은 1회전 운송비를 2만9400원으로 못박았다. 이전에는 운송거리가 왕복 60㎞를 넘으면 6천원을 더 얹어줬지만, 이마저도 없어졌다. 아무리 장거리를 운전해도 추가로 지급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장거리 운행일수록 기사들에겐 손해다.

회사 쪽은 또 해마다 1~2월 비수기에 월 100만~150만원씩 기사들에게 주는 비수기 지원금도 지난해부터 지급하지 않고 있다. 차량이 고장나도 수리비는 전적으로 기사들 몫이고, 교통사고가 나 차가 크게 부서져도 마찬가지다. 김동환(42) 대흥레미콘 노조 지부장은 “한 달에 160만원 정도를 버는데, 다섯 식구 생활비로는 빠듯하다”며 “300만원 가량의 연간 차량 감가상각비는 물론이고, 차량 폐기에 대비해 새 차를 구입하기 위한 저축은 엄두도 안 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덤프 트럭이라면 아무 화물이나 싣고 운송하면 상황이 좀 나을지 모르겠는데, 레미콘차는 레미콘밖에 못 실어나르니 계약조건이 불합리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일한다”고 하소연했다.

◇“노조 인정해달라”=레미콘 기사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회사와 개별적으로 1년 단위의 도급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단일한 조직체로 결집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충주지역 3개 레미콘노조는 지난달 지역 일반노조에 가입한 뒤, 회사 쪽에 △노조 인정과 단체협약 체결 △운반단가 35% 인상 △도급계약 폐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노조로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단체협약은 ‘불갗라며 맞섰다. 회사 쪽은 14일 3사 노조 47명의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정부·재계 무관심=레미콘 기사들을 포함한 특수고용직 문제는 정부와 경영계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레미콘차 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9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간헐적으로 논의를 벌여오다 최근 6개월 동안 공전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달 말로 활동시한이 끝날 운명에 처했다.

통계청의 지난해 8월 기준 집계를 보면, 특수고용형태 근로자 수는 보험설계사 20만6천명, 학습지 교사 10만명, 레미콘 기사 2만명, 캐디 1만4천명 등 모두 71만1천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