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증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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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증오의 사회
  • 김영회 고문
  • 승인 200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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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못 보내! 보내면 나는 죽어! 안돼! 안돼!”사랑하는 아들의 주검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어머니는 이내 실신하고 맙니다.

화장장에 메아리 치던 여덟 병사 가족들의 애끓는 단장(斷腸)의 절규에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눈물짓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식의 불효 가운데 첫 번 째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른 바 참척(慘慽)인 것이지요. 혈육을 잃는 슬픔이야 누구라고 다를 리 없겠으나 내 속으로 낳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은 당해 보지 않아도 알고도 남습니다.

옛 말에 “자식은 부모를 선산(先山)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생때같던 아들인데, 그 꽃 같은 아들이 어처구니없는 총기난사로 비명에 가는 현실 앞에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 졌을 것입니다.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닌데, 그것도 고락을 함께 하던 전우에 의한 죽음이라니, 이 억울함을 어디다 하소연할 수 있을까.

증오가 문제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을 냅니다. 증오는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사람을 죽입니다. 증오를 품는 사람이 많아질 때 사회는 갈등이 깊어지고 혼란에 빠집니다.

이번 총기 난사사건은 한 사람의 증오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명백백 보여 주었습니다. 증오심은 그것이 비록 한 개인의 것일지라도 온 나라를 들끓게 합니다. 증오의 파장은 그처럼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분노할 수만도 없는 게 이번 사건입니다. 가해자인 김동민일병 역시 미친 짓을 했지만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그 부모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 부모 역시 피해자인 것입니다.

개인의 증오심은 살인을 불러오지만 민족의 증오는 곧장 전쟁을 유발합니다. 2차대전 때 히틀러의 유태인 600만 명 대학살은 타민족에 대한 증오감 때문이었고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피 바람도 민족간의 증오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메마른 편협함과 독선에서 증오는 싹틉니다. 그리스도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했음은 인간이 있는 곳에 증오가 있기에 한 말일 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분노와 증오가 팽배해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미워하며 서로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입에 거품을 물고, 보수와 진보가, 지역과 지역이,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가,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를 증오합니다. 심지어 형제간에도, 부부간에도 증오는 꿈틀거립니다.

증오심을 버려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지는 못 할지언정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증오심을 품는 사람들은 남을 향한 증오가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마음속에서 끓고있는 분노를 식히고 증오심에서 헤어날 때 가정이, 사회가, 나라가 평화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내 고장에 청포도가 익는다’는 7월입니다. 제발 큰 비 피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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