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여!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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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이여! 솔직해지자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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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석(서원대 법학과교수)
   
요즘 대학들이 이상하다. 옛날 같으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모두들 가자미 눈이 되어 있을 대학들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대학의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난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본고사금지, 고교등급제금지 그리고 기여입학금지”라는 정부의 3불정책(三不政策)에 대해 대학들이 정면에서 반발하고 나선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는 말이다.

이미 서울대가 본고사부활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실시하겠다고 하여, 정부와 일전을 불사할 듯한 상황이다. 또 얼마 전에는 연대, 고대 그리고 이대 등 유수한 사립대학들이 불법으로 고교등급제를 강행하여 강남권 수험생들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발각되었음에도, 뻔뻔하게도 아직까지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 거기에 더 나아가 최근에 대학총장들의 모임에서 기여입학제 허용을 정부에 정식으로 건의하고 나섬으로써 향후 기여입학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 간에 해묵은 논쟁들이 치열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이처럼 요즘의 교육현황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와 대학이 마치 한 선로위에서 마주보고 무작정 달려오는 두 기차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결판이 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무미건조한 일상사에서 오랜만에 큰 싸움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뭇 기대(?)가 크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일류대학들이 정작 세계의 대학과 비교해 보면 밑바닥 수준이라는 수치를 가지고, 세계일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학생선발권보장, 고등학교 입시부활 그리고 기여입학을 통한 재정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대학실정이 낙후된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3불정책의 폐지가 낙후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는 어쩐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를 통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교육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 흔들고, 교육의 불평등성을 철저히 고착시켜 엄청난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등학교 현실을 고려했을 때, 대학별고사는 서울대 등 일류대반을 운영할 수 있는 특목고와 고액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강남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또한 고교등급제 역시 고등학교마다 서열을 정해 놓고, 서열 높은 소위 명문학교에 가산점을 주어 쉽게 입학시키자고 하는 것인데, 우리사회에서 명문고등학교는 강남과 특목고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기여입학제는 부유층자제들이 돈만 있으면 일류대학에 갈 수 있고, 일류대학들은 그 돈으로 대학의 서열화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들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여입학제의 도입에 목청을 올리는 이유가 기여입학제를 통해 사회기득층 자제를 학교의 동문으로 편재하여 이들과의 연대를 굳게 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사일 것이다.

결국 서울대학을 비롯한 일류대학들의 요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대학입시에서 부유층자제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며, 평등을 지향하는 공교육정책의 중단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음모에 편승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가뜩이나 일류대학에서 부와 학력의 세습이 심화된 현상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고 자칭하고자 한다면, 이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발상으로 국민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우리사회를 올바로 세우기 위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는 것이 차라리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신학교가 어디냐에 따라서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운명이 거의 결정되는 우리사회의 음습한 구조 속에 대학이 그대로 순응하거나 오히려 탐닉할 것이 아니라, 학력이 계급으로 이어지는 사회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 더불어 3불정책의 폐지를 주장하기 전에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역할에 대해 대학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대학을 획기적으로 재편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이제 대학은 솔직해야 한다. 우리의 대학들이 저질이 된 근본적인 이유가 학생들의 학력저하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한 교수집단, 변화를 거부하는 구태의연한 대학의 운영시스템 거기에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교육철학의 부재에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여야 한다. 그리고 늦었지만 대학의 본질과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섣부른 대학본고사의 부활이나 기여입학제의 도입보다 우리 대학들이 세계일류로 갈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그것이 대학 경쟁력의 초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 대학들의 한심한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무심천으로 흐르는 하수구보다 더 추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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