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을 말한다-진중권씨의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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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을 말한다-진중권씨의 <경향신문> 칼럼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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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의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삼성 이건희 회장의 행태. 그것은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더 이상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개 기업의 총수가 신문사 사주를 심부름꾼으로 부려가며 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공작을 했다. 한 마디로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우롱한 것이다.

여당 후보만 관리한 게 아니다. 야당의 후보에게도 보험을 들어두었다. 이렇게 여야 지도부에게 검은 돈을 뿌리며 다른 기업의 인수까지도 노렸다. 그 아래로는 의원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검찰에 떡값을 뿌리고, 최근에는 판사 출신들을 영입하는 등, 행정·입법·사법의 3부에 걸쳐 두루 발을 걸쳐두며 국가기관의 기능을 제멋대로 갖고 놀려고 했다.

얼마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은 삼성에 넘어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 막강한 덩치로 국가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대통령인들 감히 거기에 손을 댈 수 있겠는가. 어느 진보정당 의원의 말에 따르면, 멀쩡하던 여야 의원들이 갑자기 고장난 녹음기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반복할 경우, 그 뒤에 삼성의 로비가 있었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한다.

듣자 하니 삼성 출신 전직관료 중에 장·차관급이 열세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나라의 내각 수준이 아닌가. 이러니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는 사실상 “국무회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정도면 ‘국가 속의 국갗, 아니 ‘국가 위의 국갗, 가히 또 다른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삼공기(三共旗).

시민단체를 하는 이들로부터 삼성이 시장에서 어떤 행패를 부리는지 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로부터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얼마나 극악한지 들었다. ‘리움’의 개관을 계기로 문화예술계에까지 뻗쳐 있는 삼성의 영향력을 실감한 바도 있다. 하지만 정작 삼성을 하나의 ‘문제’로 보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고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재단이야 그렇다 치고, 보직을 사퇴하는 교수들은 뭔가?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게 그들의 사직의 변이나, 잘못 가르친 죄의 책임을 지려면 보직이 아니라 교수직을 사퇴할 일이다. 삼성과 재단의 이 웃기지도 않는 행태에 분노하기는커녕 외려 총학생회 퇴치운동을 벌이는 학생들은 또 뭔가?

4백억원의 돈을 받은 대가로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의 철학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고대의 몰지각한 행위를 보면서, 나는 그야말로 ‘경악’을 했다. 삼성을 위한 ‘재단-교수-학생들’의 삼각동맹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몸 밖에 존재하는 거시권력이라면 저항이라도 하지. 비판적이어야 할 대학생들의 정신까지 점령해 버린 저 미시권력에는 무슨 수로 저항한단 말인가?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은 정치를 대신하여 새로 떠오르는 권력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존재는 의식을 결정하고, 토대는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법. 진짜 권력은 어쩌면 옛날부터 청와대가 아니라 삼성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권력의 실체이고, 정부는 가상에, 말하자면 행정·사법·입법부는 삼성의 ‘이익조정위원회’에 불과하다.

상부구조를 목표로 삼았던 민주화운동은, 이제 시장이라는 토대의 민주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허울 좋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내실 있는 사회적 민주주의로 심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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