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책을 하사한 삼남 제일의 향교
▲ 청주향교 전경 | ||
청주향교를 찾아가려면 충청북도청 동편 담장에서 중앙초등학교 뒤에 <청주향교>라는 푯말의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서서 충청북도 지사 관사 앞을 지나 우암산을 향하여 가면 정면에 향교가 나타난다. 승용차는 향교까지 가서 주차할 수 있지만 버스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도청이나 상당공원 주변에 하차하여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
원래 향교는 시골에 있는 문묘(文廟)와 거기에 부속된 학교이며, 교궁(校宮), 재궁(齋宮)이라고도 하던 지방재정으로 운영했던 관학기관인데, 고려와 조선시대에 계승된 지금의 공립중등학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고려의 학제는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중앙에는 국자감(國子監), 동서학당(東西學堂)을 두고 지방에는 국자감을 축소한 학교를 설치하였다.
▲ 대성전 | ||
청주향교는 삼남(三南) 제일의 향교였으며, 세종 26년(1444년)에는 세종이 안질 치료차 초정(椒井)에 행차하였을 때 서적을 하사(下賜)한 일이 있었고, 세조 10년(1464년)에는 세조가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祭享)한 일도 있다고 한다.
조선의 청주향교는 왕이 특별한 배려를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창건 당시의 청주향교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청주향교는 조선 숙종 9년(1683년) 현령(縣令) 이언기(李彦紀)가 이곳으로 이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명륜당 | ||
전에는 이 대성전에 오성위(五聖位ㆍ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송조육현위(宋朝六賢位ㆍ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와 동국십팔현위(東國十八賢位ㆍ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위패는 대성전 전면 좌우에 있는 동쪽행랑채와 서쪽행랑채에 나누어 봉안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합 29위의 위패를 모두 대성전에 봉안하고 봄 가을 초정일(初丁日)에 석전 추모제를 지내며 스승님의 학덕과 유지를 받들고 있다.
▲ 명륜학원 | ||
과거의 향교는 공자의 도의사상을 교육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의 인본주의 윤리를 깊이 뿌리박게 했으나 이 나라의 개화와 신학교의 등장으로 현재는 유림에서 봄 가을 석전대제(釋奠大祭), 초하루 보름 삭망봉심(朔望奉審)과 명륜학원 운영으로 한문, 서예,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학생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이 밖에 글짓기 및 서예 대회, 충효웅변대회, 도의선양 강연회, 예절상담, 효열표창, 전통혼례 등을 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삶의 좌표를 상실하고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잠시 이곳에 들러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봄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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