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화 배첩부터 문화재 보수하는 일까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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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화 배첩부터 문화재 보수하는 일까지 하죠”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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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부터 배운 배첩기술 전세계에 알린 홍종진 배첩장

금속활자 연구에 인생 건 임인호 금속활자장 전수조교
“우리의 자랑스런 직지 세계에 알리는 일 앞장설 것”

지난 1~4일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및 기념행사가 열리는 청주예술의 전당 광장에서는 두 명의 한국인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명은 배첩장인 홍종진씨이고, 다른 한 명은 금속활자장 전수조교인 임인호씨다. 모두 직지의 고장 청주를 빛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취재했다.

염색도 직접, 풀관리 어려워
홍종진(55)씨는 배첩장이다.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와 비단 등을 붙여 족자, 액자, 병풍 등을 만들어 실용성과 보존성을 높이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서화 처리기법. 이를 일본에서는 표구, 중국에서는 장황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배첩분야에서 장인 소리를 듣는 인물이다. 전국적으로 두 명 밖에 안되는 배첩장 중 한 명이며 지난 99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홍씨는 최근 직지상장을 배첩해 우리나라 배첩기술을 전세계에 알렸다. 괴산의 신풍한지에 청주의 일광인쇄가 인쇄하고 홍씨가 배첩해 만든 직지상장은 수상자인 체코국립도서관을 비롯해 유네스코 본부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는 후문이다. 동양의 신비스러운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것을 접하고 ‘원더풀’을 외쳤다는 것.

충남 천안에서 출생한 홍씨는 배첩이 뭔지도 모르고 동네사람의 사촌형이 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취직할 요량으로 찾아갔다. 그 곳이 청주표구사였다. 17세 때 여기서 배첩기술을 배운 그는 26세 때인 75년 동신당표구사를 창업한다. 청주표구사는 이 분야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국내 배첩장 두 명을 배출했다.

홍씨가 하는 일은 고서화를 배첩하고 장정, 복원하는 것부터 괘불과 탱화 등 문화재를 보수하거나 복원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는 “주로 고서화 보수가 많다. 오래돼서 찢어지고 파손된 것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줄 때는 딸 시집보내는 심정과 똑같다. 문화재 보수는 전국적으로 다니는데 한 번 맡으면 7~8개월씩 걸린다. 청주 보살사의 영산회괘불탱, 안성시 칠장사의 오불회괘불탱, 통영시 안정사의 괘불 등을 보수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은 청주시 봉명2동의 배첩전수교육관. 이 곳에서는 후계자 양성, 중요문화재 보존처리, 교육 등이 이뤄진다. 충북대 미술교육과 학생들이나 배첩기술을 배우고자 오는 사람들 때문에 이 곳은 항상 붐빈다. 게다가 그는 책표지로 쓰는 한지를 전통기법으로 염색하는 일까지 한다.

“우리나라 고서 표지의 재료는 종이와 베, 비단 등인데 주로 종이가 쓰인다. 종이는 보통 한지 3~5장을 합친 배접지에 치자 물을 들인다. 이것은 책의 외관을 아름답게 하고 좀이 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치자물을 들인 다음에는 콩담칠을 해서 수분에 오래 견디고 보존되도록 한다”는 홍씨는 “능화판의 모양에 따라 무늬를 다양하게 새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묻자 그는 대뜸 풀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배첩을 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은 전통한지와 풀인데, 이 풀은 밀가루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씨의 말이다. “1년에 밀가루 20kg짜리 10개를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10년 이상 삭혀야 한다. 그냥 밀가루 풀로 하면 작품이 얼룩덜룩해서 못쓴다. 또 겨울에는 이 항아리를 얼지 않게 싸주어야 한다. 어떤 표구사에서는 도배풀로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작품이 오래가지 못한다.”

이어 그는 “문화재 수리 한 번 하려면 10년 이상 준비해야 한다. 풀을 삭히는데 10여년씩 걸리기 때문”이라는 홍씨. “옛날에는 궁 안에 배첩장이 있어 왕이 외국 사신들에게 선물할 때나 신하들에게 상을 내릴 때 하나하나 배첩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이들 중에 배첩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남이 맡긴 일감이나 처리하지 작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없어 그런 것 같다”고 쓸쓸하게 말했지만, 그에게는 배첩장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작업하면 밥먹는 것도 잊어버려”
청주예술의 전당 광장에서 금속활자 주조 과정을 시연하는 또 한 사람이 눈길을 끈다. 임인호(43)씨다. 그는 국내 유일의 금속활자장인 오국진씨 밑에서 일하는 금속활자장 전수조교다. 중요무형문화재 101호인 오씨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에 수록된 글자를 복원했다. 하지만 현재 몸이 불편해 거의 모든 작업을 임씨가 하고 있다. 직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임씨는 어려서부터 글씨 파는 것을 좋아했다. 서울에서 직업적으로 이와 관련된 일을 한 그는 87년 고향인 괴산 연풍으로 내려온다. 그러다가 오국진씨를 만나 금속활자 주조기술을 배우게 된 것.

그는 “오 선생님은 활자 새기는 일을 어떻게 했을까. 돈도 안되는데…
아마 선생님이 안 하셨으면 나도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좋아서 했듯 나도 이 일이 좋아서 아무 조건없이 시작했다. ‘미래의 나’보다 ‘현재의 나’에 만족했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은 하루라도 칼자루를 들지 않으면 편치 않다. 글씨를 팔 때 만큼은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거의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작업에 매달리는데 경제적인 문제와 그 밖에 다른 것들이 늘 나를 괴롭힌다”고 털어놓았다.

임씨를 괴롭히는 실체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한 개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업을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려 위장병까지 앓는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활자를 모두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얼마전 유네스코 직지상 수상자를 위해 직지 마지막 장을 복원한 금속활자판을 만들었다. 직지상 부상으로 수여된 이 것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개뿐인 작품이다. 금속활자는 사람 손으로 만들어 글자의 기울어짐이나 간격이 매번 다르기 때문.

“직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에 보답하고 청주시가 추진하는 직지세계화에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겠다”는 임씨. 그는 사람들이 시연회장으로 몰려들자 능숙하게 금속활자 주조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지에 직지 활자판을 찍어오는 아이들이 사인을 부탁하자 일일이 정성스럽게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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