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노동운동가의 자치단체장 도전
상태바
학생운동-노동운동가의 자치단체장 도전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9.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진태씨의 청주시장 출마에 색다른 관심

청주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정진태씨(53)는 그의 유명세(?)에 비해 지역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추석연휴에 고향 청주집을 찾아 친척과 지인들에게 본인의 의사를 밝힌 후 현재 커밍아웃의 시기를 재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하고 싶다”고 말해 심중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이런 열정은 철저하게 현장을 접하며 습득한 것이다.

현재의 직함인 산자부장관 정책보좌관(2급 이사관)이 풍기는 원만한 분위기 이면엔 삶의 치열함이 숨어있다. 그는 1974년 대학 2학년 신분으로 지금까지도 시국사건의 대명사로 불리는 민청학련 사건을 주동한 인물이다. 이철 유인태와 함께 유신철폐를 주창한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0년 선고를 받았지만 10개월 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 난다. 이후 노동운동과 재야운동으로 10여년을 지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참여정부 들어 제도권이라면 제도권인 지금의 직책을 맡았다. 그 전엔 신문로포럼 상임이사와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위원회 부위원장, 민주당 한화갑대표 정책 특보 등을 맡아 사회활동을 이어 왔다. 80년대엔 광주학살을 문제삼다가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청주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아 대외활동에 눈을 뜬 그는 청주고를 나와 서울대 외교학과에 수석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은 쫓기고 쫓겨나고를 반복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결국 두 번의 제적으로 입학 23년만인 1995년에야 졸업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규진 전 청주시의회의원과 민경욱 전 충북교통대표가 청주고 동기이다.

정진태씨가 선출직에 본격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16대 총선 때다. 고향 청주에 출마하려다가 도중에 뜻을 접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항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만 현실정치는 여러 변수를 수반한다. 그 때에도 주변의 거중조정으로 출마를 양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진태씨의 한 지인은 그를 원칙에 충실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비록 내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못 거두더라도 멀리 대다보고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충북에서 이처럼 골수(?) 운동권 출신이 선출직에 오른 것은 열린우리당 노영민의원(48·청주 흥덕 을)이 대표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