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가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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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가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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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정치부차장
   
10월12일 오후 1시 청주시 용암동 낙가산 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보살사에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고승들이 집결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종산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보살사에서 제24회 원로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조계종 원로회의란 종정 추대권과 선거로 선출된 총무원장에 대한 추인권을 갖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기관으로, 65세 이상에 승납이 40년 이상인 원로스님 1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회의에는 원로회의 스님 가운데 의장 종산스님을 비롯해 청주 관음사 회주 이두스님, 법주사 율주 혜정스님 등 충북지역에 거주하는 원로스님 3명 등 모두 13명이 참석했다.

이날 안건으로는 종무보고와 신임 원로회의 의원 선임, 전계대화상(승려에게 계를 내리는 최고 책임자) 추대 등도 있었지만, 열흘(10월31일) 앞으로 다가온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즈음해 원로들의 의견을 모아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한 취지가 컸다.

지난 9월11일 지병으로 갑자기 입적한 법장 전 총무원장의 법구를 동국대병원에 기증하고 조의금마저 생명나눔실천회에 보시한 마당에, 선거가 지나치게 과열될 경우 빈 바랑만 남기고 떠나간 법장스님의 유지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시간여에 걸쳐 열린 회의 끝에 발표된 담화문도 “사부대중의 공의를 모아 추대를 하는데 적극 동참해 주기 바란다”며 10여명의 후보가 자천타천으로 난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추대를 통한 새 총무원장 옹립을 바라는 견해를 완곡하게 담고 있다. 승단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선거로 인해 그동안 국민들의 눈총을 받아온 한국불교의 모습을 전 국민들에게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바람도 함께 담겨 있다.

사실 조계종은 교구 본사 주지 선거에서부터 시작해 국회의 성격을 띤 종회, 행정수반인 총무원장 등을 모두 선거로 뽑다 보니 때로는 세간과 출세간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종회에서는 다선과 초선스님, 비례대표 격인 비구니스님들이 자리배치에서부터 차별(?)을 받는 등 법도를 따지기가 국회는 저리가라다.

특히 총무원장 선거는 종회의원 81명을 비롯해 24개 교구에서 각각 10명씩 모두 321명으로 전국에 걸쳐 선거인단을 구성하다 보니 속세에서 지역색이 반영되듯이 이른바 ‘문도’별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십상이다.

결국 때가 때이니 만큼 대립과 대결 보다는 뜻을 모아 화합승단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원로회의를 연 것이다. 원로스님들의 담화가 10월31일 총무원장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실 원로의 권위가 존중되는 사회는 원로를 자임하는 사람들의 직함이나 위세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원로를 존중하자’고 캠페인을 벌여서 될 일은 더 더욱 아니다.
자리나 명예에 집착하는 노객 보다는 일평생 올곧게 자기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회가 된다면 자연스레 원로의 노련한 리더십과 신세대의 패기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지역사회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도 이 때문이다.

백범 김구선생이 즐겼다는 서산대사의 선시를 인용해 본다.
“눈 덮인 들판을 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러이 하지 마라 /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뒤따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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