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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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조국
  • 충청리뷰
  • 승인 2019.08.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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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생뚱맞게도 조국 파문이 오래전 글을 들춰보게 한다. ‘문재인은 뭐가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2012년 2월 5일 자 글이다. 제목에 별다른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시중에 떠돌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그 해 4월 11일 19대 총선과 12월 19일 18대 대선을 앞두고 자연인 문재인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들고 정치행보를 본격화할 즈음, 그가 국회의원을 넘어 대권후보로까지 급부상하게 되자 이를 불편해 했을 사람들이 자주 이 말을 들먹였다. 하여 앞으로 이 나라를 책임질 지도 모를 한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성향분석을 해 보자는 의욕이 앞섰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용은 이렇다.

“····이른바 ‘문재인 현상'에 대해 아주 재미나는 분석이 하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지는 작금의 사회상이 문재인한텐 큰 호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노무현의 최고 오른팔이었는데도 청와대 재임시 단 한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주군을 지킨 그만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부각된다는 얘기다.

아닌게 아니라 문재인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게 이 두가지 잔상이다. 깨끗하면서도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어찌 보면 범인들의 사석에서조차 가장 순수한 발화(發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문재인을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그저 이미지뿐만이 아닌, 실체임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 여럿 있다.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을 당시 고교 동기생인 고위 공직자가 방에 들렀지만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갔다. 청와대 근무 내내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자리를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무현은 생전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다.”

당 태종은 충신 소우에게 시로써 이런 말을 전했다. 疾風知勁草 版蕩識誠臣(바람이 거세야 질긴 풀을 볼 수 있고 사태가 어려워져야 충신을 알아본다). 문재인은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다가 건강문제로 퇴직 후 네팔 산행 중에 노무현 탄핵소식을 듣는다. 그 길로 내처 달려와 변호인단을 꾸려 고군분투하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선하다. 노무현의 검찰수사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옆을 지켰다. 노가 서거했을 땐 모든 장례절차를 책임지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아 역시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정작 주군이 힘을 가졌을 땐 다소 떨어져 있으면서 간언(諫言)과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다가도 어려움에 처하면 전면에 나서 모든 짐을 짊어진 것이다. 노무현이 가고 나서도 그는 자신이 모셨던 분의 신원(伸寃)을 위해 여전히 힘을 쏟고 있다. 권력의 실세임을 즐기며 이때다 싶어 게걸스럽게 챙기다가 줄줄이 패가망신하는 MB 측근들과는 분명 다르다.

경희대 법대생들의 고시원인 '삼의원'에서 문재인과 같이 공부했던 인사들의 첫마디는 십중팔구 “그 사람은 절대 정치할 사람이 아닌데...”이다. 당시 문재인과 같은 방을 썼던 현직 변호사는 “젊어선 열혈 청년이자 정의감이 강했지만 그가 정치인이 된다는 건 지금도 감히 상상이 안된다”고 말한다. 청와대 시절에도 문재인은 정치와 정치인이라는 것에 늘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문제는 무엇인가. 도저히 정치를 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총선에 뛰어들었고, 어느덧 대통령까지 꿈꾸게 되었으니 이거야 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낸 책의 제목처럼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을 추적하다 보면 뜻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임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꼭 정치적인 잣대가 아니더라도 요즘같은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가 문재인한테 배워야 할 게 분명히 있고, 이것이 결국 그의 지지도를 연일 끌어올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가 공직자로서 보였던 강직함과 깨끗함, 그리고 동지가 어려울 때마다 더욱 빛을 낸 그 의리와 신의가 바로 그 것이다. 문재인이 막상 정치를 하게 되더라도 과연 이것이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느닷없이 지난 글을 되새기고 싶었던 까닭은 분명하다. 조국 논란을 다른 각도에서 진단해보기 위해서다. 주군과 참모라는 관계로 말이다. 개인적인 솔직함을 말한다면 목하 심각하게 공방을 빚는 조국의 딸과 재산문제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그들 세계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금수저 사회의 특권의식과 편법으로만 본다면 조국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선, 한 번 인연맺은 사람에 대한 ‘문재인 표’ 신의와 의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같다. 조국 논란이 그토록 거셌는데도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다. 강직함과 깨끗함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큰 구설수가 없다.

한데 문재인은 민정수석을 내려놓고 히말라야로 떠났지만 조국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조국도 떠났어야 했고 그 목적지는 대학 강단이었다. 설령 대통령이 신임한다고 해도 본인이 고사했어야 한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꼭 조국만이 사법·검찰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다. 늘 정적과 맞서야 하는 국정에서 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건 참모의 교과서적 논리가 아니라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다.

바람이 거세야 질긴 풀을 볼 수 있고 사태가 어려워져야 충신을 알아본다는 말은 백번이고도 맞는다. 하지만 조국은 자기가 주군을 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때문에 주군을 어렵게 하고 있으니 이 말이 상징하는 의미와도 전혀 동떨어진다. 뜻하지 않게 대통령보다도 유명인사가 된 조국을 떠올리면 정작 결정적인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인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수에서 청와대로 들어온 조국의 역할은 아무리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따져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예의 교수스러운 강의만 해왔지 그 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간절하고도 절박한 실천이 없었다. 이미지만 키웠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뒤늦게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것 또한 졸렬하기 그지없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명박의 데자뷰가 떠오르는 게 너무나도 굴욕적이었고, 결국 이렇게 하여 촛불 시민혁명의 의미조차 상실되지나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면 혼자만의 기우일까?

조국은 이미 검찰개혁이라는 전쟁을 수행할 장수로서의 자질을 잃었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대통령한테 직언(直言)하고 간언(諫言)할 사람이 아직도 없단 말인가. 노무현의 충신 문재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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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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