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사업 그만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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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사업 그만하게 하자
  • 충청리뷰
  • 승인 2019.09.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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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승 우 풀뿌리자치연구소‘이음’ 연구위원
하 승 우 풀뿌리자치연구소‘이음’ 연구위원

 

얼마 전 보은군에 사는 분들이 동네로 찾아왔다. 이분들은 군청이 작년에 새로운 관광지를 하나 만들었는데 당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군청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주민들이라면 좀 황당할 만한 사업이다.

정말 훈민정음 창제와 신미대사의 관계로 관광지를 만드는 게 사람들의 발길을 끌까? 많은 예산을 써서 신미대사의 부모와 외조부, 동생, 스승, 동료승의 동상까지 만들었는데 정말 관광객이 이들의 인연을 궁금해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니라는 답이 나오는데, 왜 이런 사업을 벌일까? 자기 돈이라면, 자기 기업이라도 저렇게 사업을 할까?

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이 허황된 사업을 강행하려는데 막을 방법이 없냐는 시민들의 연락을 가끔 받는다. 그 곳에 살지 않는 주민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하는 조언은 누가 그 사업을 기획했는지 찾으라는 것이다. 단체장인지, 국회의원인지, 지방의원인지, 해당 부서 공무원인지, 누군가는 그 사업을 기획했을 것이다. 요즘은 정책실명제를 하니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를 보거나 단체장 공약을 보거나 사업계획서를 정보공개청구해서 누가 시작했는지를 찾으면, 누구에게 항의할지 대응방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그 사업이 충분한 사전타당성조사를 거치고 지방정부의 재정역량을 고려해서 진행되는 사업인지, 대형사업의 경우 중기지방재정계획 등에 미리 반영되어 합리적인 예산편성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면 누군가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럼 그 사람의 뒤를 캐야 한다.

그 다음에 하는 조언은 그 사업으로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라는 것이다. 주민 다수가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이익이 많이 돌아간다면, 그건 세금을 사용할 공공사업이라 보기 어렵다. 그래서 사업이 건물이나 도로라면 예정지의 땅주인이 누구인지 봐야 하고, 공사나 물품이라면 누가 납품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땅은 대법원인터넷등기소에서 열람하면 되고,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가면 계약정보시스템이 있어서 공사나 용역, 물품계약에 관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인 경우 더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 사업과 관련된 예산이 누구에게 가는지를 잘 살피면 이해관계가 드러나고, 그 이해관계를 추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문제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어찌어찌 조사를 했어도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는 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도를 보면 그 방법은 이미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원팀’이라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매우 부적절한 구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방의회의 역할은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의회가 제 몫을 하면 시민들의 수고가 줄어든다. 그 몫을 못해 시민들이 수고스럽게 조사까지 했으면 지방의회가 반성하며 그 다음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민선 8기 지방자치 시대의 현주소이다. 예전에는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를 같이 제기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거버넌스네, 무슨 위원회네, 이런 과정에 엮여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곳에서 단체나 전문가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속 끓던 주민들은 민원을 넣고 주민감사청구를 하다 감사원 감사청구로 가기도 한다. 이렇게 어렵게 가도 가재는 게 편이라고 공무원들은 공무원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는 대충 봉합되곤 한다. 결국 시간과 돈을 들여 문제를 지적하던 주민들은 낙담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기도 한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해보려는 시민들이 있어 지방자치가 지금 이정도 수준이라도 유지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욕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낙담할지라도 외면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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