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6주년 특집' 직지는 중요하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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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6주년 특집' 직지는 중요하다…왜?
  • 기고/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국장
  • 승인 2019.09.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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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가 세계 최고 지식정보문화강국임을 입증하는 실물
지식·정보 빠르게 유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활자 주조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관 내에 설치된 직지모형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관 내에 설치된 직지모형 사진/육성준 기자

 

직지의 도시 청주시
직지와 '삼장문선'

‘직지의 본향 청주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청주시에 들어서며 처음 마주하는 대형 선전문구다. 청주시내 길 가에는 직지 간판이 즐비하고 도로에는 직지택시가 달리고 있다. 또 밥상 위에는 직지쌀이 있다. 청주시가 온통 직지로 도배됐다. 그러나 직지의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시민은 너무나 적다.

직지는 왜 중요한가? 직지의 원제목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고려말 3대 선사중 한 명인 백운화상은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에 유학을 갔고, 이 때 원나라의 고승이었던 석옥 청공화상으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책을 받아온다. 귀국 후 백운화상은 이 책의 핵심부분을 모아 주석을 달고 재편집하였으나 책으로는 펴내지 못하고 타계했다.

백운화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고려 우왕 3년, 서기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 직지다. 참선의 가르침을 담은 이 직지는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직지가 세계 인쇄술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고려의 문화수준이 중국 능가”
 

우리 5000년 역사 속에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은 ‘금속활자 발명국 고려’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필자가 청주MBC PD로 재직 당시 직지 관련 특집다큐멘터리를 다수 제작한 바 있는데, 독일 취재 중에 만난 베를린대학의 한 교수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먼저 금속활자 인쇄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고, 더욱이 당시 중국의 변방국이었던 코리아에서 중국보다 먼저 금속활자 인쇄를 했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당시 서양보다 동양의 문화가 높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중국문화권에 속해 있던 고려의 문화수준이 당시 중국을 능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쇄술은 지식과 정보를 복제하는 기술이다. 바로 책을 만드는 기술이다. 지식인층이 폭넓게 형성되고 보다 빠르게 지식과 정보를 유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이 없다면 인쇄술이 발전할 수 없다. 고려에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본격 실행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목판 인쇄로, 유럽에서는 펜으로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고 있었다. 중국이 고려보다 금속기술이 뒤떨어져 금속활자 인쇄를 못하고, 서양은 쇠를 다루는 기술은 고사하고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조차 없어 펜으로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고 있었단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중국과 로마제국은 기원전에 이미 우리보다 훨씬 앞선 고도의 금속기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금속활자 인쇄를 하지 않았을까? 보다 빠르게 지식과 정보를 유통할 필요성이, 그러한 시대적 요청이 국가사회에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가 발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 페이지마다 모두 나무판에 한 장씩 글씨를 새겨야 하는 목판 인쇄와 달리 금속활자 인쇄는 쇳물을 부어 글자를 한 자씩 만들어 놓고 그 글자를 반복 재사용하면서 조판과정을 통해 책을 찍어내면 된다. 따라서 목판 인쇄에 비해 금속활자 인쇄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 하는 획기적인 정보복제기술인 것이다.

당시 지식과 정보를 복제하는 최고의 하이테크놀러지,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고, 그 기술의 발명에 성공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실용화 단계에 들어갔던 고려는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선진국이었고, 요즘 말로 세계 최고의 지식정보문화강국이었다. 여기에 금속활자 발명국 고려의 세계사적 위상이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 1200년대 초
 

사실 활자 인쇄의 최초 아이디어는 1041년 중국의 필승이란 사람으로부터 나왔고, 그는 흙으로 활자를 만들고 불에 구워 인쇄를 시도했으나 중국 내에서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사회적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시작된 것은 1490년말 ‘화씨회통관’이라는 한 문중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한 것은 1728년 청나라 옹정제 때의 ‘고금도서집성’의 인쇄였다. 유럽에서는 1455년 독일 구텐베르크로부터 출발했다.

세계 최초로 시작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는 최소한 1200년대 초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명초기의 기록도 인쇄 실물도 전해오지 않는다.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한 후 1234년경 ‘상정예문’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찍어 정부 각 부처에 배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1239년 이전에 ‘남명천화상 송증도가를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인쇄실물이 전해오지 않는다.

올 5월 문화재청은 ‘삼장문선’을 보물 제2023호로 지정했으나 고려 말 정확히 언제 누가 인쇄한 책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은 보물로 등재되기 훨씬 전에 ‘한국 서지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故 천혜봉 박사가 고려가 아닌 조선 초기의 인쇄물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그의 사후에 보물로 등재되어 언젠가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논란의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쇄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있고, 유네스코로부터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인받은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실물은 오직 직지뿐이고, 바로 이 직지가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의 그 위대한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이것이 직지의 진정한 가치와 중요성이며 세계사적 위상이다.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국장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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