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지금 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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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지금 뭐하는가?
  • 한덕현
  • 승인 2019.10.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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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세 가지다. 피의사실공표금지와 특수부 폐지 내지 축소, 그리고 주요 인사에 대한 공개소환폐지 등이다. 물론 8일 조국 장관이 직접 발표한 나머지도 중요하겠지만 이 셋의 의미는 남다르다.

문제는 이들 사안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언론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철저하게 패싱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것보다도 피의사실공표금지와 공개소환폐지는 언론의 취재 및 활동영역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 것들의 제도와 관행이 어떻게 개선되고 바뀌느냐에 따라 언론의 주요 취재 시스템은 한꺼번에 요동칠 수 있다.

한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조국이 결정하거나 윤석열이 발표하면 그만이다. 언론은 이에 대해 취지는 좋지만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고 사족이나 달고 있다. 아무리 화급한 현안이라지만 언론이 스스로와 관련된, 자기분야의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쳐다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공개소환을 예로 들어보자. 이 제도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1994년 도입된 후 25년간 유지돼 왔다. 도입 당시 이에 가장 당위성을 제공한 것은 김영삼 정부 초기의 거센 국민적 요구다. 군사정권의 쿠데타 세력과 각종 권력형 비리를 단죄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를 대표하는 공인들에 대한 공개소환만큼 국민들에게 신뢰를 안기는 계기도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언론의 입장에선 피의자 공개소환은 앉아서 기사를 쓸수 있는 편의를 제공받는 셈이 된다. 고위층 취재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받는 경우도 없다.

그러기에 공개소환이 여론의 도마위에 올려질 때마다 언론계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포토라인 제도에 대해서는 폐지 및 개선에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비중있는 피의자의 소환사실을 일정부분 알리는 데에는 크게 이의를 달지 않았다. 어쨌든 공개소환의 적법성 여부를 떠나 무려 25년이나 지속된 제도가 윤석열의 한 마디로 없어지게 됐다. 하지만 언론이 이런 문제를 놓고 자신들이 처할 향후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개혁이 조국과 그 부인의 수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윤석열의 정치적 역학관계로 재단되는 현재의 분위기는 우려되는 부분이 크다. 흔히 말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즉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헌법과 법의 정신에 근거해 책임감있게 수사하는 경지(?)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목하 검찰개혁과 관련해 여야 내지 좌우가 벌이는 공방은 대부분 수사관행을 문제삼는 데 치우치고 있다.

물론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국가, 사회적 명망가를 한 순간에 국민적 공적으로 추락시키는 검찰의 무소불위 수사관행의 비인권적 야만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당장 공개소환만 하더라도 당사자를 포토라인에 강제로 세워 망신주기와 여론재판으로 사회적 형벌을 가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검찰개혁을 교과서적 논리로써 완성할 수 있다고 보면 이는 큰 착각이다. 권력으로부터의 검찰권 독립을 말하지만 검찰조직 자체가 정부 행정조직의 한 직제에 불과한 엄연한 현실에서 제 아무리 민주적 정부라 하더라도 검찰의 운신은 정권과 권력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제받지 않는 검찰권력의 힘을 빼는 것이 개혁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국가제도에선 어차피 검찰은 권력의 간섭을 임의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말이야 살아있는 권력에도 손을 대고 기득권과 힘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잣대로 수사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문화적 현실에서 이게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어디 우리나라 뿐이랴. 이런 고민은 세계 모든 나라가 똑같다. 그러기에 피의사실공표 금지와 공개소환 폐지는 언론으로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차후 책, 즉 대안 마련을 위한 공론의 장을 하루 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쉽게 말해 누가 검찰에 소환되고 또 무슨 혐의로 조사를 받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면 언론을 통한 국민의 알권리는 극도로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이 나라 지배층 수사를 오로지 검찰의 손에만 맡길 경우 진실의 모든 것을 들춰내기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검사들 100%가 자기의 직무를 100% 정직하게, 100%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 때문에 언론이 받아쓰기를 피하기 위해선 수사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채널, 예를 들어 공개적인 브리핑을 제도적으로 규정한다거나 아니면 취재원에 대한 언론의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등의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선 수사기관 및 그 요원들에 대한 도청이나 감청까지도 용인하는 언론 선진국의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한데 조국사태로 불거진 검찰개혁 논란이 피의자 인권 못지않은 ‘국민의 알권리’는 간과하고 있지나 않은지 심히 걱정된다. 일단 숨기거나 축소하고 보자는 ‘권력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피의사실공표금지와 공개소환폐지 등을 결정할 때는 언론의 취재권 보장을 위한 마땅한 대안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권력형 부정비리나 무슨 게이트로 상징되는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는 데엔 분명 한계가 따른다. 자칫하면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검찰의 의도에 맞춰지는 기사만을 양산하게 된다.

이 마당에 정작 언론이 고민할 것은 또 있다. 오히려 검찰개혁보다 더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다. 언론개혁이다. 조국사태는 우리나라에 있어야 할 언론과 사라져야 할 언론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특단의 계기가 됐다. 친일 언론, 식민노예 언론의 실체를 이번만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것이다. 이 것들을 척결하는 과업 또한 앞으로 국민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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