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국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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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 미국
  • 한덕현
  • 승인 2019.11.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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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미국을 세계적인 불량국가로 낙인찍은 사람은 다름아닌 시대의 석학이라는 자국민 노암 촘스키다. 그는 아예 ‘불량국가’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을 난도질했다. 이기적이고 부도덕하고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혹평했다. 촘스키는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개입의 베트남전쟁을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강대국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횡포를 끊임없이 고발했다.

이러한 불량국가의 실체를 알리겠다며 지난 10월 18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라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주한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었다. 이들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부당하다면서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이미지만 본다면 1985년 5월 23일 촉발된 미국문화원 점거사건의 데자뷰나 다름없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학생 73명이 당시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사흘동안 벌인 농성은 결과적으로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무역규제를 선언하자 처음엔 미국 중재론이 힘을 얻는 듯했다. 한미일 관계에서 가장 불편해할 나라는 미국일것이라는 예단에서다. 여기엔 미국을 혈맹이라 여기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에 따른 자연스런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지소미아 갈등속에서도 일본만을 감싸고 돌았고 급기야 주한미군 방위비 70조원 분담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놨다. 이 금액의 실체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사실이라면 슈퍼 예산이라는 내년 당초예산 513조원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말이 언급되는 자체가 우리로선 너무 굴욕적이다.

미국은 분명 우리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우방이고 혈맹이다. 일제 식민통치 그리고 한국전쟁의 참화에서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역할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결코 잊혀질 일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을 벗겨먹으려 한다는 트럼프의 악담이 반갑지는 않지만 미국과 중국을 떠나서는 한국의 경제적 생존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방력으로 상징되는 국가 안위문제 역시 미국을 접어놓고는 생각하기조차 버겁다.

 

사실 7, 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기준은 친미냐 반미냐였고 반미는 여지없이 반국가적 불순으로 찍혀 치도곤을 당했다. 하지만 이 때도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끊임없이 던져졌고 이는 곧 숱한 시국사건에 단초를 제공하며 역동의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이번 대학생들의 미 대사관 진입 역시 보수들의 태극기집회 마다 나부끼는 성조기와 비교되는 또 다른 의미의 성조기가 궁금한 국민적 의문의 발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선 미국의 태생적 DNA에 한 번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고 이후 1620년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이민 1세대로 신 대륙으로 건너가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를 관통한 아이콘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서부개척과 노예사냥으로 상징되는 프런티어(frontier)정신과 둘째 자체 독립전쟁과 세계패권으로 대별되는 전쟁(戰爭), 마지막으로 명분과 의리 따위 보다는 결정적인 상황에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실리(實利)다.

두 번째의 ‘전쟁’만 보더라도 오늘날 미국 역사는 철저하게 침략과 전쟁을 통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처음 영국을 상대로한 식민지 독립전쟁을 시작으로 세기적 사건으로 불리는 남북전쟁, 여기에다 50개 주(states)와 워싱턴이라는 1개 특별구를 확보하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전쟁을 치른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2차대전은 물론이고 근현대에 이뤄진 거의 모든 국가분쟁과 전쟁에는 반드시 미국이 개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쟁에 이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첫 번째의 ‘프런티어’와 세 번째의 ‘실리’라고 보면 맞다.

아주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를 가장 극적으로 실체적 사실로써 보여주는 것이 'America First!'를 외치며 트럼프가 주도하고 있는 작금의 국제정세다. 중국이 치고 올라오자 가차없이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똑같이 친구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뜨악해 하는 문재인보다 꼬리치는 푸들 아베를 더 가까이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힘겹게 주선한 북미관계인데도 최근 트럼프 눈에는 돌연 김정은만 보인다.

2014년부터 우군관계로 지냈던 쿠르드족을 미국은 하루 아침에 배신했다. 1차대전 때는 영국 편에 서서 오스만군대와 싸우고도 뒷통수를 맞은 쿠르드족이었는데 이 번엔 독립국가를 만들어 주겠다는 미국의 꼬임에 넘어가 무려 5년을 IS와 피튀기게 싸웠지만 버림받은 것이다. 21세기 세계 최대 유랑민족이라는 쿠르드족 4000만명의 눈물은 미국과 트럼프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혈맹국들에 대한 트럼프의 좌충우돌 행동을 우려하는 미국의 일부 여론도 실은 믿음이 안 간다. 또 언제 표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 미국의 저명한 군사전문가 조지 프리드먼은 2010년 쯤 국내에도 소개된 자신의 책 ‘100년 후, Next 100 years'를 통해 “한국과 한반도는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인 폭탄같은 존재다”라며 다음과같은 취지를 예고했다.

“한국은 북한문제를 다룰 때 미국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통일이 되면 한국은 강대국이 되지만 일본에는 가시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한 위협이 된다는 뜻이다. 향후 10년간 서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협력국이 될 것이다.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면서 중국도 불신한다. 그렇다고 미국과도 편안한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쨌든 지금 힘들다. 우리가 아무리 국력과 군사력을 키운다고 하더라도 이들 나라 사이의 방정식을 풀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프리드먼의 지적처럼 한국이 폭탄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한 미국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것은 옳지 않다. 정작 한국에 폭탄이 터지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지금으로선 미국이 어떤 스탠스(자세)를 취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당장 발등의 불이 되고 있는 지소미아와 방위비분담금 문제에서 미국이나 일본에 절대로 만만하게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와 주한미군 주둔은 우리의 필요성도 있다지만 세계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절박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구와 이를 대변하는 언론들은 흔들리지 않게 미국에 잘 보이고 일본과도 잘 지내야 한다고 눈만 뜨면 합창이다. 김정은은 염장지르는 것 하나로 미국과 맞짱을 드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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