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책과 갈아엎어진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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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과 갈아엎어진 동네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12.06 1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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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얼마 전 아는 이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딸이 나중에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추천해줄 책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은 생각나는 대로 몇 권의 책을 적어서 답을 했다.

며칠 뒤 다시 그에게서 적어준 책들이 모두 절판됐노라고 연락이 왔다. 지인이 적어준 쪽지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책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있었다. 어쩌면 집 서가에 한 권 정도는 꽂혀 있을 법한 이 책은 1988년에 발매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만 판권을 갖고 있는 출판사 푸른나무가 경제위기로 유명무실해지면서 책 또한 사라져버렸다. 지인은 책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청주 중고서점들도 차례로 찾아갔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책이 사라졌다는 것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책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 없어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물건, 건물 등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추억들은 매번 사라지는 대상 1순위가 된다. 이에 예술가들은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나 늦춰보고자 쪽방촌, 판자촌 등을 찾아가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기록한 다음이다. 동네를 기록한 이후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거나 혹은 재개발이 추진돼 헐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민들이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아우성을 쳐야 겨우 공론화 될까 말까다.

이는 전국 공통의 현상으로 요즘에는 대전 중구의 소제동이 뜨거운 감자다. 소제동은 과거 철도 관사촌이 있던 마을이다. 기차길옆 오두막은 근대화의 물결이 일면서 자연스레 슬럼가로 변했다. 예술가들은 2010년부터 이 동네에 뛰어들어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슬럼화 된 동네는 활력이 넘쳤고 일부 자본이 유입되며 제 2의 서울 익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의 75%는 재개발에 찬성한다.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소제동과 맞닿은 중앙동, 삼성동은 개발이 시작됐다. 관사촌으로 한때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던 마을을 기억하는 것은 몇 장의 사진과 몇 글자 적힌 책뿐이다.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새로운 것이 밀려왔다. 그 사이 지금은 볼 수 없는 오래된 도시의 기억들이 허물어졌다. 그 자리에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아파트만 들어섰다. 신축 건물로 인해 옛 골목에 남아 있던 흔적과 후대 사람들이 덧씌워 놓은 문화는 사라졌다.

언제나 명분은 경제논리였다. 문제는 경제논리가 과연 경제적인지 정확한 분석과 규명 하나 없다는 점이다. 개발논리가 늘 경제적이었다면 지금의 환경문제로 인해 드는 비용은 생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경제라는 잣대로 다 부숴버린다. 그 자리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아파트, 상가, 종합센터 같은 것들만이 답은 아니다. 그런 시설을 지을 땅은 굳이 그 자리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도 전국은 지금 이 문제들로 들썩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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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ㄱㄷㄱㄷ 2019-12-08 02:58:14
기사의 논의 수준이 참담합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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