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상태바
내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 용 현(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
   
이건희 회장의 전환사채 불법증여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상속해줄 재산이 수조원이라니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 없는 나 같은 월급쟁이들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검사라는 직업은 자주 직장을 옮겨야해 불편하지만, 여러 지역의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천성적으로 사람 사는 일과 사람들의 철학이나 인생관에 관심이 많아 어느 지역·모임을 가든 꼭 그 속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분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그 분의 철학이나 인생관에 대하여 배우려고 노력한다.

모 지청에 부임하여 지인들에게 그러한 분을 물어보니, 한결같이 범죄예방위원이며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을 추천하였다.

김사장이 큰 사업을 하며 보증을 섰는데 돈을 갚지 않고 야반도주하여 말 그대로 쫄딱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다수 사업가들은 야반도주하거나 타인명의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는 자신의 자동차, 집 등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채무를 변제하고 남은 채무는 이후 얼마씩 갚아 나갔다는 것이다.

몇 년 후 그는 다시 조그만 사업을 재개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일부라도 채무변제를 받은 채권자들이 너도나도 김 사장을 도와주어 더 크게 재기하고,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검사 생활을 하다보니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도망갔다가 고소를 당하거나 구속이 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런데 조사하다보면 정말 피고소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돈을 빌려가 갚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라 아무 말도 없이 야반도주하거나 미리 재산을 빼돌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위 김 사장의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사업은 인간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업은 망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해주는데, 별로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서는 내 말 재주가 신통치 않은가 보다.

언젠가 처가 “당신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어요? ” 라고 물었다. 그때 위 김 사장의 일을 이야기 해주며 마음속에 간직하던 내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나에 대한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 세월이 흘러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 아이들이 어려움에 직면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는 자네를 잘 모르네, 다만 자네 선친은 잘 알지, 내가 자네를 모르지만 도와주지. 이는 자네의 선친을 믿기 때문이고, 자네가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 일세”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재산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배경도 아니다. 바로 사회의 나에 대한 신뢰이다. 이것이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재산이 되고, 능력이 되고, 배경이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내가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항상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어찌 말처럼 쉬우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