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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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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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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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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손을 대는 건 참으로 오랜 기간 국민들의 바람이었다. 단어의 의미가 변이돼 요즘 흔하게 사용되는 이른바 로망(roman)인 것이다.

당초 ‘검찰개혁’이라는 화두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은 정권의 시녀이니, 권력의 주구이니 하는 검찰의 일그러진 이미지였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부역을 서슴지 않다가 막상 그 권력이 힘을 잃으면 돌연 저승사자로 돌변해 정권 교체기마다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의 단초가 되어왔던 검찰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국수사를 기점으로 윤석열 검찰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며 끊임없이 권력의 핵심을 괴롭히는 작금의 현상은 오히려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닌데?”라는 부정적인 자각으로 치환되고 있다는데 있다.

지난 8일 검찰인사에 대해 야당이 ‘학살’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고 검찰과 법원의 일부 간부급 구성원들도 헌법적 가치를 들며 비판함으로써 이번 인사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한 가지 주목되는 건 무슨 검란(檢亂)으로 표현되던 과거 사례와는 다르게 검찰내부의 반발이 아직은 집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윤석열 사단’으로 통칭되던 핵심 요직자들에 대한 조직내 공감이 흔쾌하지 않았다는 것과 운석열이 검찰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의 방증이라고 진단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검찰과 사법부의 집단행동은 개인 차원이 아닌 조직 전체의 명분론에 의해 돌출됐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의 추이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검찰 내부의 상황은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

다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청와대와 검찰, 법무부와 검찰, 추미애와 윤석열이 ‘검찰개혁’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놓고 벌이는 조직이기주의의 권력다툼으로 비쳐지기도 해 불편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률안의 국회통과로 검찰개혁은 일단 제도적 장치를 갖추게 됐다. 그렇더라도 앞으로의 전망이 그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윤석열을 보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라는 그의 이미지는 이번 검찰인사 논란을 겪으면서 치명상을 입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본인의 주장대로 요식적인 것에 불과해 법무부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 인사권과 정부 조직의 위계를 무시하고 추미애에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보도되는 순간, 국민들은 윤석열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동안은 원칙과 소신에 따라 성역없는 수사를 하는 강단있는 검찰 수장쯤으로 인식하려 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윤석열은 자신의 뜻을 무조건 관철시키려는 또 다른 권력자, 잠재적인 권력자로 인식케 됐다는 것이다. 설령 이 것이 편견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심에는 변화가 없고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는 윤석열의 과거 발언도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이 자꾸 청와대에 칼을 들이대는 건 넓게 보아 현 정권의 안위와 지속성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통상 집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권력남용이나 일탈에 분명한 경종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조국 사례에서 보듯 일단 답을 정해놓고 진행되는 토끼몰이식 검찰수사, 그 것이 꼭 과잉수사나 별건수사로 정의되지는 않더라도 한 가족에 대해 당초 수사 대상도 아닌 것을 끄집어내 단죄를 한다는 건 아무리 성역없는 검찰력의 행사라고 하지만 국민정서와는 분명 괴리가 있다. 전화통화나 메모장 등 어찌보면 사적인 영역까지 문제삼는 짜맞추기 수사에 배겨날 사람은 없다. 의도된 수사가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그 혐의 또한 일반 상식을 벗어나선 안 된다. 검찰개혁을 집권 초반에 밀어붙이다가 좌절된 노무현의 후회는 현재의 시국과 비교돼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라고 하며 이 것을 관철시키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검사와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면서까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 것이다.

오히려 권좌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그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의 보복성 수사로 일부는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고 본인 또한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 사건들을 통해 국민은 ‘검찰을 건드리면 반드시 뒷치기 응징을 당한다’만을 확인하게 됐고 지금 윤석열의 운신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이 엄중한 시기에 그 많은 검찰력을 조국 딸의 같잖은 표창장이나 시비걸고 청와대 참모들의 전화통화를 들춰보는데 낭비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노무현은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법무부 산하에 두는 것이다. 검찰이 인사권을 달라고 하니 대통령으로서 서운합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데 지금, 여당은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여 성과를 거둔 후 인사로써 검찰을 다스리려 하고 있고 이에 반발하는 야당은 검찰 인사권을 총장에게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권력은 절대로 인간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고 그러기에 결코 자비롭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선거로써 권력자를 선출하지만 실제로 그 권력은 국민이 아닌 권력자에 의해 작동된다. 세계적으로 대의민주주의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광화문 촛불이 등장해 정권을 뒤집고 이로 인해 광장민주주의라는 포퓰리즘이 득세하가까지 그 결정적 동인도 바로 권력이라는 것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이다. 이렇게 본다면 검찰개혁 역시 그 주체는 절대로 권력이 아니다.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은 현재의 검찰만능주의에 대한 하나의 견제장치가 될지언정 검경수사의 인권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완벽하게 성사시키지는 못한다.

하여, 국민들은 이제부턴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회발전의 모멘텀(momentum)은, 그리고 이 것의 최고 선이라는 혁명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에 대한 반역에서 나왔고 우리나라의 개혁 또한 기성(旣成)과 적폐에 대한 항명의 의지에서 시작됐다.

지금 검찰개혁을 명목으로 도입되는 제도와 정책들은 그 것이 ‘결코 인간적이지 못한’ 권력에 의해 생성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구체제가 되어 또다른 반역과 항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이 관철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마냥 꽃길만을 걷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제서야 무려 70년만에 비로소 검찰의 권력분산과, 검찰권 행사의 견제 및 절제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건 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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