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별관광과 금강산 마라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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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별관광과 금강산 마라톤대회
  • 한덕현
  • 승인 2020.01.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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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북한 개별관광은 과연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될까? 꼭 이런 질문이 아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개별관광 추진의사 그리고 이에 대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이 새해 벽두부터 남북미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북한 문제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해리스의 자세는 분명 문제가 크다는 점이다. 아무리 트럼프의 신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언행은 국가간의 교섭과 중재를 최고 임무로 하는 ‘외교사절’, 대사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임엔 틀림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해리스 대사가 굳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면 “미국과의 사전협의”가 아니라 “양국간의 협의 내지 조율” 정도로라도 말했어야 맞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사전협의는 윗사람한테 무슨 내락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해리스의 발언은 지난해 11월19일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을 하던 미국대표가 “한국에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 못지않은 불쾌감으로 다가왔다. 당시 그의 신분은 국무부 보좌관이었고, 백악관도 아닌 정부부처의 일개 보좌관 주제에 마치 우리나라를 향해 “너 똑바로 안 할래”라고 일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리스의 콧수염이 재수없는 게 아니라 평소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실체적 사실로써 보여주는 것 같아 역겹다.

미국이나 해리스가 걱정하지 않더라도 북한 개별관광은 결코 쉽게 성사될 일이 아니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북한 주머니나 챙겨주려 한다느니, 그에 상응하는 북한으로부터의 대가없는 개별관광 허용은 큰 잘못이라는 보수쪽의 지적은 틀린말이 아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왜 이 시점에서 개별관광 카드를 꺼냈는 지는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숱한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지만 자력갱생을 들고나온 김정은이 현재 가장 집착하는 것은 관광사업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는 계속될 것이고 그나마 김정은의 ‘돈’가뭄을 해결해주던 석탄, 광물 수출과 해외근로자 파견·해외음식점 운영이 된서리를 맞은 이상 다른 돌파구가 없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수준의 스키장과 온천 등을 건설해 놓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는 있지만 중국 관광객이 90%를 차지하는 현실에선 답이 아닌 건 분명하다.

탈북 이후 언론에 자주 등장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끊임없이 비판적이었던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이번 북한 개별관광을 바라보는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김정은은 고민할 수밖에 없고 결국 한국 관광객을 받아들일 것이다”고 단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한국 관광객이 배낭을 메고 평양시내를 줄지어 활보한다면 북한인들의 충격과 선망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고까지 했다. 결국 그의 말은, 외화가 절실한 북한은 남한의 개별관광 제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와 개방이라는 역사적 큰 흐름을 추동할 것이라는 예언 쯤으로 들린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충청리뷰 금강산마라톤대회
사진은 지난 2007년 충청리뷰 금강산마라톤대회

 

일련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과거 충청리뷰가 추진했던 금강산마라톤대회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충청리뷰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회 연속 북한 금강산 현지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해 당시 남북관계의 상징적 이벤트로 정착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 행사는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인 박왕자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후 지금까지 못하고 있다. 2년전 문재인-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를 준비하며 전문가 자문까지 마쳤지만 그 후 남북미관계의 혼돈으로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금강산마라톤대회를 거론하는 이유가 있다. 이번 개별관광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현대 정주영의 소떼방북을 계기로 성사된 금강산관광은 1998년 11월 18일 처음 해상 루트를 시작으로 2003년 9월엔 육로관광으로 발전했고 2004년 금강산마라톤대회로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마라톤대회 첫 해인 2004년과 마지막 대회가 열린 2008년을 비교하면 그 정서적 느낌의 간극은 참으로 크다.

첫 해 대회만 해도 북한인들한테 말 한마디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사전 교육을 귀가 따갑도록 받았어도 막상 북한인들을 상대하는 게 마치 눈앞의 적을 대하듯 버거웠던 것이다. 그들의 극도로 경색된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4년 후는 어떠했나. 그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심지어 모종의(?) 부탁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에도 DJ의 햇볕정책이 국제적 화두가 되었던 시기라 행사 주최의 입장에선 햇볕정책의 실제적 효과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꼴이 된 것이다. 태영호가 말한 ‘배낭메고 활보하는 남한인들에 대한 북한인들의 충격과 선망’은 바로 이런 기대감의 발로일 것이다.

솔직히 박왕자 피격에 대해 누구보다도 안타까워 한 사람은 그 곳을 경험한 리뷰 직원들이다. 사건이 벌어진 지점은 마라톤 참가자들이 묵었던 바지선을 개조한 해상호텔과 역시 참가자들이 필히 즐겨찾던 고성항 횟집 사이의 해변이라서 마지막 행사가 열린 2008년 3월만 하더라도 문제의 백사장은 술이 과한 관광객들이 노상방뇨(!)를 해도 큰 문제가 없던 장소였다. 한데 불과 4개월만에 북한 초병은 경계지역에 접근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댄 것이다. 그 때의 북한 초병들이 남한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유연했는지는 지금 언급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당시의 사건에 대해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이명박 책임론을 거론한 적이 있다. MB는 2008년 2월 취임하자마자 북한에 더 이상 퍼주기는 없고 도발에는 그 몇 배로 보복하겠다며 여러 차례 말폭탄을 쏘아대 김정일을 자극했다. 그러기에 박왕자 피격과 2년 후의 연평도 포격은 김정일이 MB를 향해 “그럼 한 번 해볼래”식의 불장난으로 간을 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지을 수 없다. 여하튼 북한 개별관광은 가장 기본이 되는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 등 선결해야 할 난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3대 독재세습이라는, 세계에서도 전대미문의 체제를 수호해야 할 북한은 쉽게 핵포기를 할 수 없다는 것, 미국과 유엔의 제재 또한 지금으로선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 북한의 경제·외화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 한반도의 지상최대 숙원은 남북평화체제 구축과 궁극적인 통일이라는 것, 문재인 정부의 최고 성과는 과거와같은 북한의 군사적 적대행위가 사라지고 어쨌든 남북간에 표면적인 화평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런 역학관계에서의 북한 개별관광은 과연 어떻게 성사되고 또 그 실효성은 무엇이 될 것인지 앞으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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